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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토요타는 어떻게 글로벌 車 왕좌에 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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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기자

승인 : 2023. 10. 30. 16:00

산업기술기념관, 방직회사서 車 회사로 변천사
프리미엄 세단 크라운 탄생 과정과 고난, 성공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엔 창업주 행적 담겨
사라져 가는 기업가정신, 국내외 기업들에도 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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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전경.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직물을 짜던 방직회사 토요타가 어떻게 글로벌 1위 자동차기업으로 커 나갈 수 있었을까. 토요타의 고향이자 성지라 할 수 있는 일본 나고야와 토요타시에서 그 112년 역사를 짚어 볼 기회가 있었다.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과 쿠라가이케 기념관을 통해서다. 그룹 창업주의 실을 다루는 섬세함과 직접 방직기기를 만들어 혁신적으로 생산성을 끌어 올렸던 발명가로서의 저력이 바로 지금의 '토요타' 성공의 기저에 있었다. 관동대지진 이후 자동차에서 미래를 보고 치열하게 뛰어든 기술연구와 고객제일주의 정신은 일본 뿐 아니라 국내기업들에도 귀감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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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전경. /한국자동차기자협회.
◇방직에서 자동차로… 세계 1위 車 기업의 뿌리를 찾아서
지난 26일 토요타의 역사를 알고자 찾아간 일본 나고야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의 첫 장면은 다소 의외였다. 로비에 토요타 초창기 자동차들이 전시 돼 있을거란 예상과 달리 거대한 원형 방직기기가 관람의 처음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토요타그룹 창업주인 토요다 사키치가 1924년 만든 원형직기로,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기계다. 토요타가 방직회사로 출발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 기념관은 1994년 6월 미래 발전을 이끌어갈 이들에게 일본의 제조기술 역사를 체계적으로 소개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일본 경제산업성으로부터 가치를 인정 받아 '근대화 산업 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11월 중 누적 방문자 수는 700만명 돌파가 예정돼 있을 정도다. 섬유기계관·자동차관으로 구성됐고 두 전시실에서 그룹 창업주 토요다 사키치와 아들인 토요타자동차 창업주 토요다 키이치로의 꿈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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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로비에 설치 돼 있는 원형 방직기기.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요시오카 시니어 어드바이저의 열정적인 안내를 받았다. 10년간 기념관에서 활동해 온 그는 내년 5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목화솜이 실로 변하고 또다시 직물로 변하는 과정을 사키치가 직접 발명한 직기의 변천사와 함께 보여줬다. 직기의 산업화와 생산성 혁신은 훗날 자동차 사업을 벌였을 때 엔진을 만드는 기술력 바탕으로 작용했다.
설명에 따르면 사키치의 아들 키이치로는 도쿄대 기계공학부를 졸업한 이후 토요타 방직에 입사했지만 유럽과 미국 시찰에서 자동차산업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은 키이치로가 토요타자동차를 창업하는 계기가 됐다. 모든 철도 등 모든 운송 인프라가 멈춰섰을 때 포드의 자동차가 복구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산업의 미래가 거기에 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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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전경. /한국자동차기자협회.
키이치로는 강한 의지로 토요타방직에 불과 15명 수준의 자동차부서를 출범시켰고 1933년형 쉐보레를 들여와 분해해 연구에 착수했다.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좋은 철을 얻기 위해 만든 제철소가 지금의 '아이치제강'이다. 엔진을 만드는 데에는 난관이 많았지만 직물 주조물 기업의 특성을 활용해 극복해 냈다. 물론 초창기 제품은 고장이 나기 일쑤였다. 1년간 800번이나 개량이 필요했을 정도다. AS의 중요성을 알게 된 시점으로, 초창기부터 고객제일주의는 토요타의 중요한 경영이념이었다. 현재 토요타의 캠리는 '고장이 안나서 못 바꾼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의 완성도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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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전경. /한국자동차기자협회.
1937년 사명을 '토요다'에서 지금의 '토요타'로 바꿨다. 더 임팩트 있는 어감이 좋았고 글로 썼을 때 총 8획이 나왔는데 숫자 8(八)은 후지산 모양과 비슷해 행운의 의미로 여겨졌다고. 이후 1955년 탄생한 첫 양산 승용차 토요타 크라운 1세대는 포드와 GM, 크라이슬러를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토요타 내에선 '한계를 넘어서는 혁신'을 상징하게 됐고 무려 16세대에 걸쳐 일본의 국민차이자 프리미엄 세단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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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 '쿠라가이케 기념관' 전경. /한국자동차기자협회
◇토요타 정신의 고향 '쿠라가이케'… 창업이념 오롯이
토요타 성공 배경에 더 확신을 갖고자 27일에는 본사가 있는 아이치현 토요타시의 '쿠라가이케 기념관'을 찾았다. 탁 틔인 쿠라가이케 연못 앞에 위치한 이 곳은 토요타의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 없다. 토요타의 출발점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거대 산업을 일으켜 세우면서 '토요타시'로 새롭게 명명 됐다.

기념관 앞에는 토요타자동차 창업주 키이치로 회장의 생가가 있을 뿐 아니라, 귀빈이 찾았을 때 맞이하는 영빈관도 여기에 있다. 삼성의 승지원과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 2010년 대규모 리콜 사태가 발생하고 2011년 재출발을 선언했던 곳도 바로 여기다. 저택 앞 벚나무를 심으며 '선조에게 사죄하는 마음'과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다. 벚나무를 심은 2월 24일은 현재 그룹내에서 '토요타 재출발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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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 '쿠라가이케 기념관'에 토요타 크라운 1세대 모델이 전시 돼 있다. /한국자동차기자협회
토요다 아키오 회장이 취임 당시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지목한 데가 바로 이곳 쿠라가이케 연못이었던 이유다. 기념관은 1937년 창립 이래로 토요타 자동차 누적 생산대수 1000만대 달성을 기념해 1974년 9월 세워졌다. 1937년 토요타 창립 후 1000만대 생산까지 35년이 걸렸다. 지금은 1년에 1000만대를 생산하는 세계 1위 회사로 성장했다.

미야코 요리야스 부관장의 생동감 넘치는 설명이 시작됐다. 전날 찾은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과 전반적인 맥락은 비슷했지만 상대적으로 토요다 일가의 정신과 행보에 촛점을 둔 전시가 눈에 띄었다. 부관장이 직접 나서 최초의 동력 직기를 시연했다. 토요타 생산방식은 낭비 없이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했다. 직기를 통해 만들어진 수익을 기반으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는 배경 설명도 이어졌다.

키이치로 창업주는 '매일 더 안전하고 쉽게, 일의 효율을 개선하자', '현지현물(현장에 답이 있다는 의미)', '고객제일중심'을 외쳤다고 한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은 사장이던 시절 "상대방의 시선으로 일을 해야 한다. 일의 프로가 돼야 한다, 100년 전 큰 개혁의 시기를 겪은 만큼 지금은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런 점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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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 '쿠라가이케 기념관'에 토요타 크라운 1세대 모델이 전시 돼 있다.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전시장에는 4개의 라디오라마가 전시돼 있었다. 라디오라마는 디오라마에 음성 안내를 더한 것으로 버튼을 누르면 일본어 또는 영어로 음성이 나온다. 음성은 마치 구연동화처럼 디오라마 장면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이 4개의 라디오라마는 키이치로가 차를 만들 때 고생한 결정적인 장면을 모아 구성했다. 미야코 부관장의 생생한 육성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요컨대 키이치로가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처음 15~16명을 모아 자동차부를 구성했는데, 모두 깨끗한 손을 하고 참고서만 보며 회의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참고서만 보면 답이 나오냐, 현지로 가서 자동차를 직접 보고 만지고 해야 한다"면서 현지현물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1934년 현장에서 답을 얻은 끝에 간신히 엔진을 만들었고 노사가 단합하는 계기가 됐다고. 키이치로는 2018년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자동차부 원년 멤버 사진도 같이 전시됐다. 일본에선 도전하는 기업가의 대표적인 초상으로 이들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또다른 디오라마는 1935년 키이치로가 종업원들을 모아 차를 만드는 것보다 판매가 더 어렵다며 '고객제일주의'를 선언한 장면을 담았다. 현재 LG 등이 강조하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경영철학이 1930년대 시작됐으니 얼마나 앞서 나갔는지 가늠할 수 있다. 키이치로는 차량을 만들 때는 기계를 상대 하면 되지만, 팔 때는 더 어려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고객의 중요성을 설파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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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 '쿠라가이케 기념관'에 꾸며진 디오라마. /한국자동차기자협회
1936년을 표현한 디오라마는 아키오 회장이 직접 설명 할 정도의 중요한 내용이 담겼다. 트럭을 먼저 만들었지만 고장이 잦았고, 이에 토요타는 포드 트럭을 따로 준비해 고장난 고객의 트럭에 실린 짐들을 다 옮겨 실어 날라 줬다고 한다. 키이치로 스스로도 크라이슬러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데, 이는 행여 또 자신이 만든 차량이 고장나면 고객을 그만큼 기다리게 해야 하기 때문에 자존심을 세우기 보다는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깔려 있다.

토요타는 세계 1위 자동차회사일 뿐 아니라 일본내에서도 재계 서열 1위다. 이번에 들여 다 본 토요타 성공 배경은 뜨거웠던 창업주의 기업정신과 문화의 계승, 고난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도전 정신에 있었다. 토요타의 뿌리와 고난과 성장이 기념관을 통해 후대에 전해지고, 귀감이 되고 있었다. 사라져가는 한국과 일본의 '기업가 정신'을 토요타를 보며 되살릴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최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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