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실패 경험 미국, 하마스 축출 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가자지구 통치 기대
이스라엘-미국, '포스트 하마스' 논의 본격화
|
이스라엘은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무장정파 하마스를 붕괴시킨 후 통치는 하지 않겠지만 새로운 무장단체 결성을 막기 위해 보안 통제권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통치에는 반대하지만 이 지역이 테러 기지가 돼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
|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은 이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민간 정부를 세울 의향이 없다며 하마스를 무너뜨리면 미국·유럽연합(EU)·이슬람 다수 국가를 포함한 국제적 연합 또는 가자지구 정치 지도자들에게 통치 책임을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헨 장관은 "우리는 가자지구를 통치하거나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싶지 않다"며 "단지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20년 전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고 이라크를 통치하려고 했던 방식으로 가자를 통치하는 데 거의 관심이 없다고 WSJ은 평가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도 이날 TV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 북부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 대한 시가전이 본격화됐음을 시사하면서 하마스 소탕을 위한 이번 전쟁이 끝난 뒤 하마스가 이 지역 통치자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지만 이스라엘도 통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코헨 장관은 다만 이스라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가자지구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집트를 포함한 어떤 국경으로부터도 무기가 가자지구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확인해야 할 것"이라며 "그곳에 기지를 건설하려는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울 권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전날 미국 ABC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보안 책임이 없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봤기 때문에 무기한 전반적인 보안 책임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와 코헨 장관은 이스라엘의 향후 역할을 군사적 점령으로 묘사하지 않았고,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전체 또는 일부만 통제할 계획인지 등 중요한 질문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는데 이는 전후 안보 협정의 세부 사항이 아직 유동적임을 시사한다고 WSJ은 분석했다.
◇ 바이든 대통령 "이스라엘 가자지구 점령, 큰 실수"...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존 '두 국가 해법' 제시
아울러 이스라엘의 이러한 방침은 가자지구 점령에 부정적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등 국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자위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강조하면서도 가자지구 점령에 대해선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2003년부터 10년 동안 이라크에서의 미국 경험을 인용하면서 제한적이고 국지적인 군사 작전이 끔찍한 인도주의적 상황을 완화하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통제권을 비교적 신속하게 일종의 민간 정부에 넘길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만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민 모두가 존엄과 평화 속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추구해야 한다"며 "이것은 '두 국가 해법'을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다.
|
바이든 행정부는 하마스의 통치가 끝나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을 통치하고, 서방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가자지구를 장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WSJ은 보도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지난 5일 서안지구에서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을 만나 미국은 자치정부가 향후 가자지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국무부 고위 관리가 전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가자지구를 점령, 38년간 통치하다가 2005년 가자지구를 떠났지만 하마스가 PA를 폭력적으로 몰아내고 그곳을 장악한 2007년 이후 봉쇄에 들어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CNN방송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전날 인터뷰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은 이스라엘을 위해 좋지 않다고 여전히 믿는다"며 이스라엘과 그 문제에 관해 계속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베단트 파텔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의 발언을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을 더욱 분명해 진다.
파텔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에 대해 "이런 결정은 팔레스타인인이 주도해야 하며 가자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팔레스타인 땅으로 남을 것이라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가자의 재점령을 지지하지 않으며 그건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라며 양국 간에 이견이 없음을 시사했다.
아울러 파텔 부대변인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전날인 "10월 6일 그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 우리는 이스라엘과 동의한다"며 "이스라엘과 이 지역은 안전해야 하며 가자는 더는 이스라엘인이나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테러 공격을 개시하는 기지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 이스라엘군, 가자시티 시가전 본격 시작 "하마스 군사 거점 장악...지하 터널 입구 파괴, 무기 회수"
이스라엘과 미국이 '포스트 하마스'를 논의하고 있는 것은 이번 전쟁이 시가전으로 격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가자시티 중심부의 하마스 군사 거점을 장악하고, 병원 인근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하마스 대원들을 공격했다고 밝혔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이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지휘 통제센터를 점령하고, 하마스 대원들을 혼잡한 가자시티 외곽의 은신처나 과밀 병원 인근에서 몰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TOI는 분석했다.
TOI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점령한 가자지구 북부 하마스 거점에서 대전차 미사일과 발사기, 정보 자료와 기타 무기를 발견했다.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지금까지 1만4000개가 넘는 가자지구 내 하마스 목표물을 타격했으며, 100개가 넘는 지하 터널 입구를 파괴했다"며 민간 기반 시설 등에 숨겨 놓은 로켓 등 4000여점의 무기를 회수했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제껏 하마스가 보지 못한 힘으로 남부에서 전쟁이 진행되는 중"이라며 "수천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지상과 터널에서 제거됐으며, 지상 작전을 통해 하마스 지휘부와 진지, 땅굴 등 다수를 파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마스가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을 지점까지 이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갈란트 장관도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 직전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군이 지금 가자시티의 심장부에 있다"며 "가자시티는 역대 최대 규모의 테러 기지"라고 말했다.
그는 "IDF 병력은 북부와 남부에서 가자지구로 진입했다"며 "도보로, 또는 장갑차와 탱크 등을 타고 공병들과 함께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자지구 테러리스트들과 기반 시설·지휘관·벙커·통신소 등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가고 있으며, 가자 주변에서 올가미를 죄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