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거부권 행사 배경과 관련해 “국회가 사실상 정부의 시행령 등의 내용까지 관여할 수 있도록 하고 법원이 아닌 국회가 시행령 등의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심사권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서 위헌 소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사법권을 침해하고 정부의 행정을 국회가 일일이 간섭하겠다는 것으로 역대 정부에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안”이라면서 “정부의 행정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국정에 심각한 지체와 퇴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거부권 행사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국회와 정치권에서 국회법 개정 이전에 당연히 민생 법안의 사활을 건 추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묶인 것들부터 서둘러 해결되는 것을 보고 비통한 마음마저 든다”면서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여당에서조차 그것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 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며 국회법 개정안을 여당인 새누리당까지 ‘정략적으로 처리’했다며 여야를 싸잡아 비판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과 최악의 가뭄대책, 경제활성화가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여당과 청와대, 여당 내 파열음, 여당과 야당 관계 파탄,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면충돌이라는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서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만큼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여야의 ‘정략적 합의’에 의한 “국가행정체계와 사법체계를 흔들 수 있는 주요한 사안”이라며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심각하게 판단하고 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총선)가 불과 9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까지 시급한 정부 정책에 ‘발목’을 잡게 되면 사실상 박 대통령의 국정 동력과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조기 레임덕으로 빠져들게 되기 때문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 입장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작심이나 한 듯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이라며 강경한 어조로 민생을 챙기지 않고 ‘정쟁’과 ‘정략’만 일삼는다며 국회 행태를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정치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먼저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이 잘 될 수 있도록 국회가 견인차 역할을 해서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와 정부 정책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비판만을 거듭해 왔다”면서 “그 단적인 예로 지금 정부가 애써 마련해서 시급히 실행하고자 하는 일자리 법안들과 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 3년째 발이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가짜 민생법안이라고 통과시켜주지 않고,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해볼 수 있는 기회마저 주지 않고 일자리 창출을 왜 못하느냐고 비판을 하고 있다”면서 “언제까지 이런 법들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서 정부에만 책임을 물을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박 대통령은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면서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까지 구체적으로 겨냥했다.
당장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강력 반발하면서 국회 일정 보이콧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날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가능하다. 새누리당이 160석으로 전체 의원수 298명의 과반을 점하고 있어 재의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은 사실상 자동 폐기가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