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패소비용' 문턱 못 넘고 소송 주저"
영미권은 비용 '각자부담'하거나 제도적으로 보완
21대 국회 개정안 발의…濫訴 우려에 논의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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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소송 패소비용은 지난 2014년 이른바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최소 1년에서 많게는 5년 넘게 지적장애인을 강제노동시켜 공분을 사게 한 이 사건은 이후 피해자 8명과 시민단체가 신안군 등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으나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패소했고, 이후 신안군이 피해자들에게 소송비용으로 700여만원을 청구했다.
해당 소송의 공동대리인으로 참여했던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당시 패소한 피해자 중 4명은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에 항소를 포기했다. 변호사 입장에서 패소비용 신경쓰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고 강제할 수는 없었다"며 "국가배상소송의 경우에는 위자료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청구해서 1000만원만 인정돼 일부승소한 경우 법원에서는 기계적으로 10분의 9에 대한 소송비용을 원고에 부담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 지체장애인 2명이 지하철 승강장의 넓은 간격과 높은 단차로 인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을 막고자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소송비용확정신청'을 통해 이들에게 각 500만원 남짓 비용을 청구했고, 이에 두 사람은 지난해 공익소송까지 패소자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민사소송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을 조력했던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법원을 통해 소송구조 사건으로 인정받거나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지원받는 방법이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패소비용이라는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재판청구권 행사를 주저하게 된다"며 "공익소송은 우리 사회가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판사의 설득을 구하는 과정으로 패소 가능성이 높은 소송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법률구조 제도만으로는 불완전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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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 등은 이미 공익소송 패소부담 완화 법제화
영미권 등에서는 이미 제도적으로 공익소송에 대한 패소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에는 우리와 달리 소송비용에 대해 '각자부담원칙'을 채택하고 있어 원칙적으로 패소해도 상대방의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공익소송에 대해서는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one-way fee shifting)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원고가 승소했을 경우 상대방에게 변호사비용을 청구할 수 있지만 패소하더라도 변호사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방식이다.
영국은 우리와 같이 '패소자부담원칙'을 채택하고 있지만 공익사건에 대해 '보호적 비용명령(Protective Cost Order, PCO)' 제도를 도입했다. 원고의 청구에 따라 법원에서 공익사건으로 인정되면 패소하더라도 소송비용 부담을 면제 혹은 부담의 상한을 설정하는 명령이다.
독일 역시 '패소자부담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변호사가 성공보수를 받을 수 없고 소송비용이 법제화돼 있으며 비교적 저렴한 편에 속한다. 또한 독일은 각종 소송에 대비한 '법률보험' 서비스도 활성화돼 이를 통해 각자가 패소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각자부담원칙'으로 변호사비용을 상대방에게 상환시킬 수 없는 일본의 경우 2000년 이후 패소자부담원칙 도입에 대한 논의가 있기도 했으나 사회적 약자의 재판청구권 침해 우려를 이유로 법안이 폐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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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도 관련법 발의…논의는 지지부진
다만 법안 통과를 위한 21대 국회에서의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일부에서는 '공익소송'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자칫 공익을 빙자해 소송을 남용해 사회적인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최정규 변호사는 이에 대해 "공익소송 전제 자체를 부정하는 말과 같다. 법원에서 공익소송 여부에 대해 충분히 판단할 수 있고, 판례가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남소(濫訴)도 줄어든다"고 반박했다. 조미연 변호사 역시 "공익소송에 대해 패소부담 완화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논의 자체가 끝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주민 의원은 "공익소송에도 일률적으로 패소부담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재판청구권을 위축시킨다는 지적들이 있어 법안이 만들어졌다. 현재 남소 우려 등에 대한 부분을 불식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고, 정기국회 내 추가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게 하겠다"며 "패소부담 완화를 넘어 애초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조력 기회를 넓히는 방안도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