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 살아 숨쉬는 전통
11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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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부터 11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태초(太初)' '유동(流動)' '꿈(夢)' '조물(造物)' '궤적(軌跡)' '물속의 달' 등 6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성파스님은 조계종 종정(통도사 방장)이다. 하지만 특별전에서는 지위에 가려진 한 예술가의 면모가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도자기, 한지 작품, 산수화, 옻칠 공예, 자재 작품 등 120여 점이 전시됐다.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은 다를 테지만 필자가 느낀 것은 따뜻함과 화려함, 깊은 무게감이었다. 이러한 것이 어우러져서 전통적이면서도 전통에서 초월한 '우주'가 공간 속에 표현됐다.
자연에서 채취한 염료인 모시·명주·옻 등을 주로 사용한 까닭인지 전시된 작품들은 오래됐으면서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경주나 서울 경복궁에 있는 문화유산에서 보는 '죽어 있는' 한국의 아름다움이 아닌 '살아서' 내일 또다른 모습으로 발전하는 미(美)였다. 스님은 "우리의 문화예술이 전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며 "이제 우리 미술도 활개를 펼 때가 됐다.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예술 걸작을 보면 위대한 정신문화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 손에서 꽃을 핀 선예(禪藝)의 밑바탕에는 유구한 민족문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성파스님은 22세에 조계종 전 종정 월하스님을 은사로 통도사에 입산했다. 출가 전에는 서당서 시서를 공부했고, 출가 이후에는 사경, 도자기, 동양화, 민화, 칠예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일반인이 겪을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 경험이 농축된 까닭일까. 어느 한 경계로 그의 작품은 규정될 수 없었다.
스님은 가장 민족적인 것을 추구할 때가 가장 세계적이면서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 그가 작품 재료로 '옻'을 사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파스님은 "옻은 우주선과 핵잠수함에도 쓰이는 첨단 재료"라며 "어떤 재료보다 가벼우면서도 덧칠하면 단단해지면서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재료"라고 설명했다.
우주 삼라만상을 대표하는 요소인 흙과 물, 불에 대한 스님의 철학도 남다르다. 그는 "수많은 번뇌망상이 흙이라면 한 생각으로 몰아치는 것이 물로 반죽하는 것이고, 불에 굽는 것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 즉 태워 없애는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게 바로 도자기다.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이 선이란 선종의 사상을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 행위로 표현했다.
대중들에게도 스님의 한지·옻칠 작품과 도자기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들은 화려한 색감에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질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태초의 가능성을 지닌 옻, 그리고 번뇌를 재료로 물과 불이란 단련으로 만들어진 도자기. 불자 또는 수행자는 스님처럼 도자기를 빚는 사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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