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성장과 경제발전 더디게 하는 장애물될 것”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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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충실의무, 회사법 반하고 실익도 없다"
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8개 경제단체와 한국기업법학회가 15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콘퍼런스센터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논란과 주주 이익 보호'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상법 전문가들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회사법 체계에 반하고 실익도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상법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로 규정하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은 그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은 기업 경영활동에 제약하는 '반(反)시장 입법'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대부분의 상법 전문가들은 개정안을 우려하는 핵심 배경으로 '사법 리스크에 따른 경영활동 위축'을 꼽았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 기업 경영진이 단기적 손실을 주장하는 일부 주주들로부터 배임죄 소송 위협에 시달리게 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나 인수·합병(M&A)을 주저하게 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조발제를 맡은 토리야마 쿄이치(鳥山 恭一) 일본 와세다대 로스쿨 교수는 "일본 회사법상 주식회사의 이사는 회사와 위임계약의 법률관계를 맺음으로써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지는 것이며 이사가 주주에 대해 별도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토리야마 교수는 현재 일본 회사법과 한국 상법 체계가 비슷하다는 점을 짚으며 "만약 한국이 이사가 주주에게 직접 의무를 지도록 법률을 개정할 경우 지금까지의 회사법 체계에 반할 뿐만 아니라 회사 채권자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권리까지 침해하게 되므로 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개정하면 기업경영에 악영향"
토론의 좌장을 맡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 분할·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수주주 피해를 '이사 충실의무 확대'로 해결하려는 것은 올바른 해법도 아니고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상법에 이미 소수수주 보호 규정들이 구비된 만큼, 법체계를 훼손시키는 무리한 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사의 책임을 면제해 줄 '경영판단원칙' 도입"이라고 강조했다.
박준선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판례에서 인정하는 신인의무의 법리를 우리 상법에 추상적 문구로 그대로 이식(移植)할 경우, 해당 법 조항이 향후 법원의 판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강영기 고려대 금융법센터 교수는 "실질적인 지배주주가 있는 상장회사에서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상충 리스크가 있는 경우 이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강화해 소수주주의 피해를 예방하는 방식이 무리한 상법 개정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서성호 한국기업법학회 학회장은 개회사에서 "상법이 국가 경제와 기업에게 헌법 역할을 하는 만큼 개정에 신중해야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며, 학계가 구축한 이론에도 혼선을 가져오지 않는다"면서 "상법을 정치적 이해관계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신중한 논의 없이 쉽게 개정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기업경영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할 경우, 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국내기업에 대한 공격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며 "경영권 방어수단이 사실상 없는 우리 기업들은 무차별적인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투자자금으로 쓰일 소중한 자금을 소진하게 되고, 제조강국인 우리 경제에도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이사에게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지우는 것만이 소액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도 아니고, 오히려 불명확한 책임기준으로 이사에게 예상치 못한 책임 확대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결국 이사에게 책임 회피 성향을 부여하고, 기업의 성장과 국가의 경제발전을 더디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