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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채널뉴스아시아(CNA)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선 이날 이스와란 전(前) 교통부 장관의 첫번째 재판이 열렸다. 싱가포르에서 고위 공직자, 정치인이 부패와 관련된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된 것은 40여 년만이다.
이스와란 전 장관은 당초 부패와 사법 방해 등 35건의 혐의를 받았으나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형법 165조를 위반한 혐의 4건과 사법방해 혐의 1건으로 기소장을 수정했다. CNA는 나머지 30건의 혐의도 선고에 고려될 것이라 전했다.
싱가포르의 형법 165조로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된 사람으로부터 귀중품을 받거나 취득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선 공무원과 정치인은 직무 수행 중 50 싱가포르달러(약 5만 2000원) 이상의 선물을 받는 것이 금지돼 있다.
이스와란 전 장관은 그간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 밝혀왔지만 이날 재판에선 기소장 낭독 이후 자신에 대해 제기된 5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이날 검찰은 이스와란 전 장관에게 6~7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하고 변호인측은 8주 이하의 징역형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고려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달 3일로 선고를 연기했다.
이스와란 전 장관이 직면한 대부분의 혐의는 형법 165조와 관련돼 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 측은 "선물을 얻는데 적극적으로 역할할수록 공무원으로서의 지위를 더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이스와란 전 장관은 선물을 수동적으로 받는 것 이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장관으로서 그의 신분과 관련된 사업 거래와 연관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공직자가 특정 사업 거래와 관련해 선물을 받게 된다면 정부의 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며 "이러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으면 그러한 행위가 용인된다는 신호를 보내게 되는 것"이라 강조했다.
이스와란 전 장관은 두 명의 사업가로부터 약 40만 싱가포르달러(약 4억 1356만원) 상당의 선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교통부 장관 재임 중 말레이시아의 호텔·부동산 재벌인 옹벵셍의 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옹벵셍의 전용기를 이용하거나 축구경기 및 F1(포뮬러 원) 그랑프리 VIP 티켓을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싱가포르 정부 프로젝트에 수 차례 참가한 건설회사의 이사인 룸콕셍으로부터도 위스키·와인·골프채와 브롬톤 자전거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별도의 사건을 조사하던 싱가포르 반부패 조사기구인 부패행위조사국(CPIB)가 옹벵셍의 개인 제트기 탑승 내역을 압수하자 이스와란 전 장관은 자신이 지불하지 않았던 도하행 제트기 이용 비용과 고급 호텔 숙박비를 상환하려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선 사법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이스와란 전 장관 측은 "정부와 관련된 사업 관계가 생기기 전 해당 사업가들과 친구였다"며 "국가에 38만 싱가포르 달러(약 3억 9294만원)를 자발적으로 반환했고 유죄를 인정해 법원의 시간과 자원을 절약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의 행동이 "정부에 불리한 일을 한 적이 없고 충성심과 의무를 훼손했다는 증거도 없다. 조사 과정에서 우정의 맥락에서 주어진 선물임을 완전히 밝혔다"며 8주 이하의 징역형을 주장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1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2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도 180개 국가 가운데 국가청렴도 5위를 기록했다. 엄격한 법 집행과 강력한 부정부패 방지 시스템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부패 방지를 위해 고위 공직자에게 민간 부문 최고 소득자에 버금가는 급여를 지급한다. 장관급의 경우 연봉이 100만싱가포르달러(약 10억원)가 넘는다.
이런 싱가포르에서 장관급의 최고위 공직자가 비리 사건으로 체포된 것은 1986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뇌물 수수혐의로 조사를 받던 테창완 국가개발부 장관은 기소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탓에 이스와란 전 장관은 싱가포르 역사상 처음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최초의 장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