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매체들, NYT 등 미 매체들 추종 보도
후보 교체론', 후진국 정치 '리셋 증후군'
바이든 "경선 무시로 민주주의 못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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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토론 전부터 고령 문제를 이유로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해 왔고, 토론 이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전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과 퓰리처상 수상자인 토머스 프리드먼 NYT 칼럼니스트 등의 칼럼, 나아가 관련 논의에 관한 실시간 보도를 통해 논란을 키웠다.
◇ 바이든 대선후보직 '사퇴' 논란 부추기는 NYT "완주 의사 바이든, '반항적'"
NYT "바이든, 측근에 대선 불출마 가능성 언급"...WSJ "바이든, 캠프 관계자에 완주 의지 밝혀"
완주 의사를 밝힌 바이든 대통령을 '반항적(defiant)'이라고 표현해 온 것도 NYT다. 바이든 대통령이 5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전능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사퇴할 수 없다"며 후보직 사퇴 가능성을 일축하자, NYT는 '위기라니 무슨 위기? 바이든이 민주당의 비관론을 거부했다'는 뉴스 분석 기사에선 바이든의 ABC 인터뷰를 "(이미 발생한) 피해뿐 아니라 (이후) 현실을 통제하기 위한 행위(exercise)였다"고 주장했다.
특히 NYT는 3일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불출마 가능성을 측근에게 언급했다고 전했는데, 그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선 그가 캠프 참모들에게 '대선전 고수' 의지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아무도 민주당 후보인 나를 밀어내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발언을 놓고 미국의 두 유력 일간지가 상반된 내용을 보도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TV토론 이후 유세와 인터뷰 등을 통해 일관되게 사퇴 요구를 일축한 것으로 보아, WSJ 보도가 사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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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NYT 등 미국 매체들의 주장을 한국 매체들이 추종하듯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말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부인 질 여사와 차남 헌트 등 가족들과 휴가를 보냈는데, 이를 "사퇴 결정의 분수령"이라고 보도한 한국 매체가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퇴 기로'에 섰다는 표현도 썼다.
또 다른 한국 매체는 바이든 대통령이 TV토론 후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긴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성공 오류' '과거의 과대평가' '자기 과신'에 빠졌다고 꼬집었다. 이 매체는 또 미국 정치 전문가가 아닌 한반도 전문가가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TV토론에서 보인 취약점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유력한 대안으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꼽았다고 쓰기도 했다.
이러한 국내외 일련의 관련 보도는 '사실'보다 '주장'을 우선하는 매체들의 고질병이 드러난 사례로 보인다. 아울러 완벽하지는 않지만, 절차를 통해 성숙해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결핍돼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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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태국에서 쿠데타가 빈발해 정권이 자주 교체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모든 것을 갈아엎고 새로 시작하려는 '리셋(재시동) 증후군'으로 풀이한 바 있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 김대중 정부의 '제2 건국',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역시 유사한 본질의 현상이다. 제22대 국회 초선 비율이 44%(제21대 50%)로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것, 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 의혹 사건 수사 검사들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는 것, 민주당 강경 지지자들이 대선이 끝나자마자 대통령 탄핵을 주장한 것 또한 '리셋 증후군'에 속한다고 본다. 리셋의 가장 극단적 시도가 쿠데타나 공산주의 혁명이다.
기자는 미국 민주당 후보 교체론이 제기되기 시작한 1일 아시아투데이 유튜브 채널 '아투TV'를 경선을 통해 결정된 대선후보에 대한 사퇴 요구는 미국의 정치 체제의 안정성을 해치는 반(反)민주주의 행위로 비판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 매체들이 NYT·워싱턴포스트(WP) 등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후보 교체가 마치 현실화할 수 있는 것처럼 전하는 것은 미국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의 결과 아닌가 싶다고 했다.
미국에는 국회의원 후보 공천이 대부분 비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장기의 졸(卒) 배치하듯 이뤄지는 한국의 정당 문화 내지 관행이 없다. 연방의원뿐 아니라 지방의원 등 여러 선출직 공무원 후보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코커스(당원대회) 등 경선을 통해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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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이 8일 민주당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등장한다. 경선에서 87%(1400만표) 이상 득표해 대의원 약 3900명을 확보해 민주당의 잠정 대선후보가 된 과정, 유권자들 발언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냐며 이를 무시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미국 주요 매체들의 바이든 사퇴 부추김이 지속되고, 한국 매체들의 중계가 이어진다? 언론의 가치를 언론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령 리스크는 일찍부터 인지됐고, 경선 과정에서 바꿨어야 한다. 현 상태로 승산이 없다고 여겨지자 '룰' 자체를 바꾸려 하는 것이라면 자유민주주의의 부정이다. '이번 대선 승리를 위해 이판사판 물불 안 가리겠다'는 선언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