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채용 비리 감사를 받으며 비리 연루 전·현직 직원의 인적 사항을 검은색 펜으로 지워 제출했다. 인적 사항을 모르고 무슨 조사를 하나. 자료 요구에 윗선 결재를 이유로 일주일을 다반사로 넘겼다. 컴퓨터 포렌식을 거부해 감사를 지연시키고 3급 이상 고위직에 대한 인사, 조직, 복무 관련 자료는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것도 있다. 김세환 전 사무총장은 재직 중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지급받고 퇴임 때 반납하지 않았는데 감사원 확인 결과 모든 자료가 지워졌다. 박찬진 전 사무총장 딸을 특채한 혐의를 받는 전남선관위 직원들은 문서 파일을 삭제했고 신용우 전 서울 선관위 상임위원은 감사를 앞두고 관련 서류를 파쇄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증거 인멸이다.
조직적인 감사 거부, 증거 인멸과 자료 삭제는 선관위에 불법과 부정, 비리가 만연됐다는 방증인데 공직자가 증거를 인멸하는 것은 국기문란 행위나 다름없다. 국가의 정책과 행정은 모든 게 기록되고 자료로 남아야 하는데 이를 인멸할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자료 파기를 부를 것이다.
우리는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 간부들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관련 자료를 몰래 삭제해 재판받고 있는 것을 기억한다. 이런 행위는 강력한 조치가 없으면 선관위, 산업부뿐 아니라 다른 부처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세자'들이 판치는 선관위라며 해체 수준의 강력한 정상화 대책을 촉구했는데 야당도 함께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