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인터뷰] ‘파묘’ 장재현 감독 “우리 역사의 상처, 파묘하고 싶었죠”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files.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303010000402

글자크기

닫기

이다혜 기자

승인 : 2024. 03. 03. 16:07

파묘, 잘못된 과거 들춰 없애는 것
오컬트 장르에 '항일 코드' 녹여내
리얼리티 위해 이장현장 수차례 찾아
적당한 긴장감·신비로운 공포 선사
묘벤저스 배우들 연기력·호흡에 감탄
장재현 감독
장재현 감독이 영화 '파묘'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제공=쇼박스
영화 '사바하' '검은 사제들'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이 '파묘'로 다시 극장가에 'K-오컬트'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파묘'는 연일 흥행 기록을 쓰고 있다. 지난 2일 기준 누적관객수 500만명을 넘겼다. 이는 지난해 최고 흥행작이자 '천만영화'인 '서울의 봄'보다 빠른 추세다.

'파묘'는 묘를 이장한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장 감독은 어린 시절 목격했던 파묘 현장이 영화의 소스가 됐다고 했다. 인부들이 파낸 땅에서 나올 무언가가 궁금했고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단다. 리얼리티를 위해 실제 이장 현장을 수차례나 찾았다.

"이장 현장을 열다섯 차례 이상 참관했어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장의사를 따라 전북 진안에 갔을 때에요. 묘를 팠더니 근처 수로공사 때문인지 관 안에 물이 차 있었어요. 장의사가 급하게 토치를 꺼내서 화장하더군요. 그때 파묘는 결국 잘못된 걸 꺼내서 없애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를 들춰 없앤다는 느낌 같은 거죠. 그러면서 우리가 가진 상처와 트라우마를 파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바닥에 있는 티눈을 제거하고 다시 생기지 않게 레이저로 지지는 것처럼 말이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 이창동 감독이 수업시간에 항상 '이야기는 만드는 게 아니라 만난다'고 했어요. 집에 가만히 있으면 만날 수가 없죠. 그래서 항상 레이더를 켜고 다닙니다."

파묘
유해진(왼쪽부터)·이도현·김고은·최민식이 영화 '파묘'에서 '묘벤져스'로 호흡을 맞췄다/제공=쇼박스
파묘
유해진(왼쪽부터)·이도현·최민식이 영화 '파묘'에 출연한다/제공=쇼박스
'파묘'의 전반부는 오컬트 미스터리의 장르적 재미가 펼쳐진다. 후반부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항일 코드'를 녹여낸다. 여기에 상덕(최민식)의 친절한 내레이션이 더해져 몰입감을 높인다.
"최종 시나리오에선 막을 나누지 않았어요. 영화를 편집하고 나니 관객들에게 복선을 미리 던져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텍스트를 넣어 약간의 준비를 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게 전체적인 편집 방향에서 괜찮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후반부에 김상덕의 내레이션이 있어서 이걸 앞부분에도 넣었어요. 영화에는 액션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이걸 감정적으로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양오행'에 대한 세계관을 잡아주는 역할도 필요했죠."

예고편부터 등장하는 '험한 것'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린다. 장 감독은 일본의 사무라이 악령을 정반대 식으로 해석해 보여주고 싶었단다.

"서양에는 뱀파이어가 있고 중국에는 강시가 있어요. 이건 우리에게도 친숙하죠.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의 사무라이 악령은 현지에선 잘 알려져있지만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음양사'라는 만화책을 좋아했는데 이걸 보면 일본의 10~20대는 그 캐릭터에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다른 문제였죠. 저는 귀신을 촬영한 적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전 세계 심령사진을 많이 봤죠. 결론은 귀신은 찍는 게 아니라 찍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장 감독은 당초 '음흉한 공포 영화'를 생각했단다. 그러나 단순한 공포 대신 적당한 긴장감과 신비로움을 택했다.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큰일 나겠다 싶었죠. 극장이 망할까 봐 매일 갔어요. 그때 '파묘'를 그냥 공포영화가 아니라 화끈하고 개운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주인공들까지 다 바꿨어요. '험한 것'도 무섭게 보여주기보다 신비롭게 보여주려고 했죠. 공포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은 이에 대해 아쉬워할 것 같기도 합니다."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속인 화림(김고은), 봉길(이도현)이 팀을 이뤄 '험한 것'에 대항하는 모습을 두고 '묘벤져스'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묘벤져스'가 서로 의존해서 아이를 구하고 나중에는 그 세대가 살아갈 땅을 구해요. 저 정도 베테랑이 호흡을 맞추니 연기 앙상블은 저절로 생겨난 것 같아요. 김고은의 진가는 후반부에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미지가 강렬하잖아요. 나무에서 다른 정령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두렵지만 이겨내려고 하려는 마음, 전달력 등이 세계적인 배우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후반부가 감탄스러워요. 유해진은 기술적으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예요."

장재현 감독
장재현 감독이 영화 '파묘'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제공=쇼박스
장 감독은 전작들을 통해 한국 오컬트 영화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자극적인 공포가 아니라 인간과 종교, 신을 적절히 섞어 현 사회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저는 생각보다 밝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반대로 그로테스크 한 것을 동경하는 것 같아요. 교회, 절, 성당을 제외하면 요즘 사랑, 의리, 정을 말하는 곳이 좀처럼 없는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사라지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요. 제74회 베를린 영화제 포럼 섹션에 파묘가 초청 돼 상영됐을 당시 한 외국기자가 제게 '오리엔탈 그로테스크 신비한 영화감독'이라고 했어요. 이게 제 정체성이 된 것 같아요. 차기작에서도 그로테스크는 버리지 못할 것 같아요."
이다혜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