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종교계·조합 등도 소송 빈번…"조율과 조정보다 소송 의존"
고의적 소송 악용 사례도…'소송 과잉' 해소 위한 다각도 접근 필요
소송을 제기할 권리, 즉 소권(訴權)은 헌법상 권리다. 대한민국 헌법 27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성숙과 민권의 향상에 따라 당당히 법적 구제를 요구하는 개인과 단체, 기관 등의 소권 추구 경향이 강해진다는 점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지혜롭고 차분한 조율과 조정보다, 사법부에 과잉 의존하는 '소송 과잉'은 사법체계 안정성뿐만 아니라 자칫 우리 사회 건전성마저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아시아투데이가 법원행정처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전국 고등·지방법원 법관(정원 외 법관 등 제외) 1인당 사건처리 건 수는 2017년 526.6건, 2018년 482.2건, 2019년 477.7건, 2019년 477.7건, 2020년 472.5건, 2021년 440.5건으로 해마다 줄었다. 5년 새 16%가량 줄어든 수준이다.
하지만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법관 1인당 사건처리 건수는 여전히 많은 수준이다.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독일은 89.63건, 일본 151.79건, 프랑스 196.52건이었던 반면 한국은 464.07건이었다.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5배 이상 많은 셈이다. 법관의 사건 적체 문제가 대두되자 법관 증원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단순히 법관 증원을 통한 단편적인 해결보다는 근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각계각층에서 발생하는 공동체 내부의 문제 해결을 사법부에 의존하는 이른바 '사법 만능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3년간 총 5만건 이상 소송을 제기하는 '프로소송러' 등 비단 개인적 일탈이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재판이나 고소·고발 등 법적 해결에 기대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퇴진과 당내 비상대책위원회 수립 과정에서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이 반복된 사례는 정치권의 소송 과잉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국민의힘 사례뿐만 아니라 선거철이 되면 '공천 효력 금지' 등 정당 관련 사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입법부를 구성하는 단체인 정당의 결정에 사법부가 법리 해석 등을 동원해 적극 개입하려 하는 것은 자칫 헌법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당뿐만 아니라 종교계, 입주자대표회의나 조합 등 이권 관계로 형성된 집단 내에서는 '임시지위'를 다투는 가처분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종교계 관련 재판을 자주 맡았던 한 변호사는 "기독교·불교 등 종교계에서 가처분을 신청하면 해당 종교만의 특수한 규정이나 교리 등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며 "종교 전문가가 아닌 판사가 일일이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형식적 재판을 통해 고의적으로 소송 과잉을 부추기는 사례도 있다. 최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내정된 뒤, 아들의 '학교폭력'(학폭) 논란으로 사임한 정순신 변호사 사례로 학폭 재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재훈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변호사시험 2회)는 "소송을 많이 제기해 (타인에게) 공격권을 남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학폭 재판처럼 방어권을 남용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단순히 판사 자원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소송 과잉을 방지하기 위해 사건을 세부 분류하고 각각에 맞는 소송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권은 정치의 논리가, 종교권도 자체 규율 등이 존재하지만 특정 집단의 내부 문제를 법원에 갖고 오는 게 만연하면 공동체 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자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