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원인 불명확하거나 비논리적으로 기재…욕설·비속어도 부지기수
'소송구조 제도' 악용해 소송 비용도 안내...통계 왜곡 현상도 문제
법률상 근거 없이 소송을 청구하며 '소송 과잉' 현상을 부추기는 사례가 해마다 늘고 있다. 세칭 '프로소송러'로 불리는 이들은 주로 국기기관과 본인에게 불리하게 판결한 법관, 소송 절차 참여 법원 공무원 등을 상대로 소를 반복 제기한다.
26일 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8~2020년 3년간 총 300건 이상 소송을 접수한 청구인은 10명이다. 연당 100건 기준으로 계산하면 21명에 달한다. 이 중 혼자 5만5402건을 신청한 정모씨는 무차별적으로 소를 제기한 뒤 패소하면 항소·상고해 소권을 남용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한 모자 관계의 청구인들은 2020년 1월부터 5월까지 넉달 만에 무려 3462건을 청구하기도 했다.
소권 남용이 의심되는 사건의 대표적인 특징은 청구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임에도 반복적으로 재심청구하거나 유사한 내용의 소를 반복적으로 제기하기도 한다. 심급을 불문하고 전국 21개 법원에 동시다발적으로 소를 내는 경우도 있다.
청구 원인이 불명확하고 비논리적인 것도 특징이다. 실제 청구서에 "피고는 무능에 대해서 확인한다", "피고는 선동하지 마라", "피고들은 죄다 인민군들임을 확인한다" 등을 기재했다. 이외에도 욕설·비속어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소송 청구서에 욕설 등이 기재돼 있어도 원칙적으로 피고에게 송달해야 한다.
◇"소송구조 제도 악용"…사법 통계 왜곡도 발생
전문가들은 부당 소송이 의심되는 이들이 법원에서 소권 보장을 위해 마련한 '소송 구조(救助) 제도'를 악용한다고 분석한다. 소송구조 제도는 소송비용을 지출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해 법원이 비용을 면제·유예해 주는 제도다.
이들은 소송 과정에서 드는 인지액·송달료 등 비용을 모두 내지 않고 있다. 일단 소장을 접수한 후 소송 비용이 청구되면 소송구조 제도를 신청하고, 구조 신청이 기각되면 다시 불복하는 소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송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미납 소송비용은 국가가 대납하는 실정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소장이 접수되면 소장 번호를 부여한 뒤 인지 보정, 송달 등 절차가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한다"면서 "하지만 무분별하게 소송을 제기한 청구인들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정작 지원이 절실한 사람들이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소송 과잉으로 인한 통계 왜곡도 문제다. 사법통계는 사법행정의 미래를 설계하는 기초 자료이지만 통계 왜곡으로 유의미한 분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년 전국 고등법원 항소심 민사소송 처리율은 82.7%로 2018년 110.6%와 비교할 때 27.9%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과잉 소송 의심 건수를 제외하면 2018년 103.9%, 2019년 98.8%로 차이가 5.1%밖에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