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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칠레 대선 결선투표에서 개표율 95% 기준 좌파연합 ‘존엄성을 지지하다’의 보리치 후보가 55.8% 득표율로 사실상 승리를 확정했다고 미국 블룸버그통신·영국 일간 더 가디언 등이 밝혔다.
결과적으로 역전극이 펼쳐졌다. 지난달 치러진 1차 투표에서는 27.9%의 카스트 후보가 보리치 후보(25.8%)를 따돌린 바 있다. 이날 카스트 후보는 득표율 44.2%에 머물며 보리치 후보에 10%포인트 이상 뒤지자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하고 당선 축하 전화를 건넸다. 미국 경제전문 CNBC는 “양 극단 정치세력의 맞대결에서 칠레 국민들은 왼손을 들어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로써 칠레는 미첼 바첼레트 전 중도좌파 정권 이후 4년 만에 다시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중남미 전체로 봐도 좌파가 득세하는 형국이다. 앞서 멕시코·아르헨티나·페루 등이 최근 3년 사이 줄줄이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바뀌었고,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된 국가로 꼽히던 칠레마저 좌파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칠레 최연소 대통령에 오른 1986년생 보리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유럽계 칠레인이다. 출생지(고향)가 칠레 최남단 푼타아레나스인 그는 크로아티아계 아버지와 스페인 카탈루냐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직 미혼이고 정치학자인 여자친구 이리나 카라마노스와 3년째 사귀고 있다.
1980년대 초 이후 출생자를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인 보리치는 2004년 산티아고로 올라와 칠레대 로스쿨에 다니면서 학생단체에서 활동했다. 당시 시위 지도자로 유명했던 카밀라 바예호를 저지하고 2011년 11월 칠레대 총학생회장에 오르면서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보리치는 바예호보다 더 강경하게 학생시위를 주도했다.
그의 정치인생은 이제껏 거침없는 탄탄대도를 내달렸다. 학생운동가로 지명도를 얻은 보리치는 2년 뒤인 2013년 고향 지역구 하원의원으로 정치 무대에 본격 입성했다. 2017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대선 출사표를 던진 것은 불과 10개월 전인 지난 3월이었는데, 그는 출마에 필요한 3만5000명의 서명을 겨우 채웠다.
이후 놀라운 반전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2019년 칠레를 뒤흔든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 관련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당시 교육·의료·연금 등 불평등을 낳는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이런 사회적 흐름이 좌파정권 득세 및 보리치 같은 신성의 등장과 맞물려있다. 이뿐만 아니라 “보리치는 세금 인상, 사적 연금 폐지, 녹색 산업, 평등 확대 등을 공약해 그동안 투자친화적 경제에 불만이 높았던 민심을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풀이했다.
그러나 35세 대통령 앞에 높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 블룸버그는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 중 하나인 칠레에게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경제적 변화의 길이 열렸다”며 “앞으로 분열된 의회, 급격한 경제 침체, 새 헌법 제정 및 지속되는 사회 불안 등 거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