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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열흘간의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을 직접 찾아 조문했다. 박 대통령은 YS 영정에 헌화 분향하고 손명순 여사와 차남 현철씨의 손을 두손으로 감싸 잡으며 깊은 애도와 진정어린 위로의 뜻을 전했다.
터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필리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말레이시아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으로 다자외교의 여독이 채 풀리지도 않았지만 잠시 청와대에 들러 짐만 푼 채 곧바로 YS의 빈소를 향했다.
사실 박 대통령과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YS와의 관계는 2대에 걸쳐 생전에 원만하지 못했다. YS는 야당의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항상 대척점에 서 있었다.
1963년 군정 연장 반대 집회로 서대문형무소에 23일간 수감됐고 1969년에는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주도하다가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1972년 유신선포와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유신 막바지 1979년에는 신민당 총재 직무집행이 정지된 데 이어 의원직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YS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에는 박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부터는 껄끄러운 관계를 이뤘다. 1999년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재평가를 시작한 데 대해 YS는 시국성명까지 내면서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이에 박 대통령도 YS를 겨냥해 강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YS는 언론인터뷰 등을 통해 “나는 18년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싸웠고 그는 내게 못할 짓을 많이 한 사람”이라면서도 “하지만 아버지와 딸은 다르다”고 자주 호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YS와 박 대통령의 관계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당시 박 대통령과 경쟁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손을 YS가 들어주면서 다시 멀어졌다.
YS의 차남 현철씨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으로 당권을 잡고 있던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출마를 희망했다. 하지만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YS가 적잖게 상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그해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결정된 뒤 YS를 전격 방문하면서 불편했던 관계는 어느 정도 화해무드로 바뀌었다.
YS는 대선 직전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도 대선에서 승리한 다음날 YS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했다. 2013년 2월 박 대통령 취임식에는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YS가 참석했고 박 대통령은 악수를 나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YS의 생일 때마다 축하 난을 보내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췄다.
이제는 YS가 영면함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딸인 박 대통령과의 2대에 걸친 관계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