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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었던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실용주의적인 태도로 마침내 대타협을 이뤄냈다. 남북한 당국이 이번에 보여준 전례 없는 인내와 대타협의 정신으로 박근혜정부 임기 후반기에는 남북정상회담도 개최돼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남북이 합의한 민간교류 활성화와 남북 당국자 회담 정례화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 조치 해제 문제를 비롯한 경제 협력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경색 국면 때문에 남북 경협이 다 막혀 있었는데 이번 극적 타결을 계기로 새로운 경협과 함께 더 큰 발전, 그리고 경제 재도약을 위한 대한민국과 기업들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남과 북이 25일 새벽 전쟁위기까지 치닫는 일촉즉발의 무력 충돌 가능성 속에 열린 최고위급 판문점 회담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극적 합의문을 도출했다. 남과 북은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11년 만의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북한의 경기도 연천군 육군28사단 지역에 대한 도발, 우리 군의 포격 대응으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자 지난 22일부터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이날 새벽까지 나흘 간 밤샘 마라톤협상 난항 끝에 극적인 타결을 이뤘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사실상 ‘전권’을 위임 받은 남측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 북측의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대남 비서는 사실상 정상회담 수준에서나 합의할 만한 남북 간 중대 현안에 대해 포괄적이면서도 일괄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김 실장은 이날 새벽 2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 최고위급 회담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남북은 공동보도문을 통해 “최근 남북 사이에 고조된 군사적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협의하고 합의했다”고 밝혔다.
6개항으로 이뤄진 합의 사항은 △남북 간 서울·평양 당국회담 정례화 △비무장지대 지뢰폭발 북측 유감 표명 △군사분계선 일대 남측 확성기 방송 중단 △북측 준전시상태 해제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추진 △다양한 분야 민간교류 활성화 등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에 대해 향후 남북관계 전반의 새로운 역사적 전기와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북한학과)는 “두 지도자가 대리인을 앞에 두고 간접적인 정상회담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라면서 “박근혜정부는 임기 후반에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고 북한 김정은 역시 이제까지의 대남정책을 바꿔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이번 2+2 회담에 안보와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대표이면서 최고 지도자의 최측근이 참석했기 때문에 두 지도자의 뜻이 반영된 회담의 결과로 봐야 한다”면서 “두 지도자가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겠다는 공동 인식 속에서 한발씩 양보해 결실을 거둔 미래지향적인 협상 결과”라고 높게 평가했다. 양 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대화와 교류, 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이번 남북 간의 극적 합의는 박 대통령이 이날 밝힌 “우리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 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박 대통령의 확고한 대북 원칙론이 통했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이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까지 치닫는 긴장 상황에서도 확고한 원칙을 끝까지 지켜내는 ‘뚝심’을 발휘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물꼬를 텄다는 분석이다.
43시간 동안 난항을 거듭한 협상 결과 나온 합의문에 박 대통령의 일관된 대북 원칙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평가다. 북한이 남북 간 최고조 긴장을 촉발하게 된 비무장지대 지뢰도발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명시적으로 ‘사과’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 남북관계에 있어서 북한의 첫 명시적 사과를 이끌어 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남북 간 회담에서 막판 치열한 기싸움을 한창 벌이고 있는 24일 오전에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 “결코 물러설 사안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확성기 방송도 유지할 것”이라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단호한 기존 입장을 거듭 천명해 북측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당초 막바지 진행 중인 회담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라는 대북 원칙을 재천명했다.
결과적으로 북측의 유감표명 입장을 이끌어냄으로써 박 대통령의 흔들림없는 원칙 고수가 먹혀들었다. 과거 역대 정부와는 다르게 대북 원칙을 지켜야 통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면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사실 박 대통령의 확고한 대북정책의 원칙은 북한 지뢰도발이 발생한 이후부터 일관되게 견지됐다. 지난 4일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우리 군은 북측이 가장 싫어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전격 재개했다.
이에 북한이 지난 20일 서부전선 도발을 감행하고 김 제1비서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면서 북한군에 완전무장 명령을 내리고 최전방의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자 박 대통령은 즉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북한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고 군 대비태세를 유지하라”며 강력 응징 원칙을 지시했다. 또 박 대통령은 모든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21일 육군3야전군사령부를 전투복 차림으로 전격 현장 순시해 북한 도발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강력 응징하라고 우리 군에 주문했다.
결국 박 대통령의 이러한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응징 원칙으로 인해 북한이 먼저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명의로 우리 측에 대화를 제의하도록 이끌었다는 관측이다. 박 대통령은 남북 최고위급 회담의 ‘격(格)’ 문제에서부터 기존에 견지해 온 원칙과 상식에 따라 외교안보 컨트롤 타워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한의 군 서열 1위인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으로 맞췄다.
애초 김양건 당 비서가 김 실장 앞으로 대화 제의를 해온 것을 황 총정치국장을 수석대표로 내보내라는 역제안을 함으로써 남북 양측 정상의 뜻을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최고위급 인사끼리의 대화 테이블이 마련됐다. 이는 과거 북한이 차관급을 수석대표로 내세우는데도 우리는 장관급을 내보내온 전례에 대해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것은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박 대통령의 지론에 따른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도발→위기조성→타협·보상→재도발로 이어지는 남북관계의 악순환을 이번 기회에는 반드시 끊겠다는 박 대통령의 확고한 원칙과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다. 배수의 진을 친 박 대통령의 강력한 원칙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김 실장은 “이번 합의는 북한이 위기를 조성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한 데 대해 정부가 이를 거부하고 일관된 원칙을 갖고 협상한 것에 대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협상을 계기로 북측이 그동안 일삼아 온 도발 행태에 어느 정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날 박 대통령의 ‘안보 원칙론’이 관철된 결과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번 합의가 그동안 반복돼온 북한의 도발-대화-보상-재도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동시에 남북관계의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이날 남북 최고위급 회담의 극적 타결에 대해 정부가 원칙을 지키면서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했다고 긍정 평가하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이번 합의가 단순히 남북대치 상황 해소에 그쳐서는 안 되고 정상회담과 남북관계 전반의 새로운 전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