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뤄진 경찰의 특활비 예산 삭감은 지난 9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가 발단이 됐다. 야권은 당시 집회에서 경찰이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해 폭력진압을 했다며 경찰청장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고, 조지호 경찰청장이 "절제된 공권력의 행사였다"며 공식 사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예산 삭감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특활비의 투명성을 지적하며 검찰을 겨누던 야당의 칼끝이 지난 9일 도심 집회 이후 돌연 경찰을 향하자 경찰 내부에선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예산 관련 부서에서 근무 중인 한 간부는 갑작스런 국회의 각종 예산 요구에 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일선 수사관들은 "참담하다"는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
안보수사 소속 한 팀장은 "경찰청과 국회의 예산 줄다리기를 볼 때면 일선 수사 현장의 고민은 담겨 있지 않은 것 같다"며 "주요 인물에 대한 탐문 수사를 할 때 사용하는 '수사 차량'도 없어 수사관 개인 차량까지 이용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내부에선 집회마다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게 경찰의 본연의 임무인데, 이를 폭력진압으로 매도하고 예산을 볼모로 경찰 지휘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행태에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국회는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를 열고 야당 주도로 전액 삭감된 예산안에 대한 증액 심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청 특활비 등의 예산은 무더기로 보류됐고, 여야 간 증·감액을 둘러싼 조율 작업이 이뤄지긴 하나 정치적 논쟁으로 논의의 진척은 더디기만 하다.
경찰의 특활비는 수사에 필수 불가결한 예산이다. 경찰 지휘부가 아닌 피해자의 범죄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예산으로 일선 수사 현장에선 1만원도 소중한 금액이다.
하지만 국회는 지난 9일 도심 집회의 충돌이라는 일만 놓고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예산을 삭감했다. 예산 부족으로 수사 현장이 위축돼 막을 수 있던 피해를 막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지 의문이다. 그때도 국회는 경찰 수사가 잘못됐다며 탓할지 모르겠다. 민생이 아닌 정쟁으로 결정한 '책임 없는 국회 결정'이 참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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