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현지시간) 에레페페 등 중남미 언론에 따르면 파나마 정부는 콜롬비아와의 국경 '다리엔 갭'을 임의로 넘어 밀입국하는 외국인에게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대통령령을 발동했다.
파나마와 콜롬비아의 국경이 만나는 다리엔 갭 밀림은 남미에서 북미(미국)로 연결되는 육로 관문이다. 다리엔 갭은 워낙 자연환경이 험한 데다 불법 이민자들을 노린 강력범죄까지 들끓어 죽음의 루트로 알려져 있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려는 이민자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 발동된 대통령령 194호를 보면 파나마에 입국한 뒤 적발된 밀입국 불법 이민자에겐 1인당 최고 미화 5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1회 300달러, 2회 600달러, 3회 900달러, 4회 이후 1000달러 등으로 밀입국을 반복할수록 벌금은 가중된다. 불법 이민자는 벌금을 납부해야 파나마에서 출국할 수 있다. 경제적 여력이 없어 벌금을 내지 못하는 불법 이민자는 본국으로 강제송환된다.
다만 벌금형은 유연하게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령은 불법 이민자의 취약성에 맞춰 벌금이 조정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다리엔 갭을 거쳐 미국으로 올라가는 불법 이민자 대부분은 베네수엘라나 아이티, 쿠바 등 경제가 어려운 국가 출신이다.
2023년 미국에 가기 위해 다리엔 갭을 통과한 외국인은 총 52만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불법 이민자를 국적별로 보면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콜롬비아, 중국 순이었다.
가팔랐던 증가세는 올해 들어 꺾이고 있다. 파나마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 13일까지 다리엔 갭을 통해 남미에서 파나마로 넘어온 불법 이민자는 모두 27만4444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집계된 43만2211명과 비교하면 36%나 감소한 수치다. 이럴 때 파나마가 벌금 부과를 결정한 건 강제송환 등 강경 대응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7월 새 정부가 출범한 파나마는 미국의 예산지원을 받아 불법 이민자들을 항공편으로 강제송환하고 있다. 8월부터 현재까지 20회에 걸쳐 800여명의 콜롬비아인과 에콰도르인 등 밀입국한 불법 이민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강제소환이 시작된 이후 다리엔 갭을 통해 파나마에 입국한 에콰도르 불법 이민자는 92%, 콜롬비아 불법 이민자는 65% 감소했다고 한다.
미국은 이를 위해 예산 600만 달러를 지원했다. 파나마는 지금까지 강제소환에 미국이 지원한 재정 중 110만 달러를 집행했다.
강제송환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강제송환을 시작한 직후 파나마는 "다리엔 갭을 건너는 중국인도 강제송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의 권위주의 통치가 강화되면서 남미를 경유해 미국으로 건너가려는 중국인은 급증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주로 태국을 거쳐 남미 콜롬비아로 건너간 후 북미로 올라가기 위해 다리엔 갭에 뛰어들고 있다.
파나마는 압도적으로 수가 많은 베네수엘라 출신 불법 이민자 송환도 금명간 개시한다. 파나마가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진 베네수엘라에서 외교관들을 철수시키고 베네수엘라가 동일한 방식으로 맞대응하면서 양국 간 외교관계는 사실상 마비돼 있다. 양국 간 협의가 불가능해 그간 베네수엘라 출신에 대한 강제송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라나시온 등 외신은 "국가명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파나마에서 적발된 베네수엘라 불법 이민자들을 (중남미 국가로 추정되는) 복수의 제3국이 받아주기로 했다"며 강제송환 개시가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7월 취임한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다리엔 갭은 루트가 아니라 국경"이라며 불법 이민을 근절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다리엔 갭에 철조망 설치, 강제송환, 벌금부과 등 강경책은 그의 취임 후 속속 취해지고 있는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