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조정장치는 OECD 회원국의 70%가 이미 도입했다. 독일과 일본은 2004년, 스웨덴은 25년 전인 1999년 도입했다. 지금 당장 도입하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토록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정부 연금개혁안의 백미가 자동조정장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국민연금 개혁안은 차선책 중 최선책이다 [쓴소리 곧은소리], 시사저널 1828호).
정부는 시점을 구분해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제안했다. 연금지출이 보험료 수입보다 많아지는 2036년이 제일 빠르다. 연금수지적자, 즉 기금이 소진되기 전년도인 2054년에 도입하는 것은 30년 후로 제일 늦다. 필자는 이런 정부안에 매우 비판적이다. 당장 내년부터 도입해야 세대 간 공정성 및 재정안정 달성이 가능하다고 봐서다. 주요 국가보다 강도는 약하면서도 개혁 골든타임이 한참 지난 뒤에 작동되도록 제안해서다. 정부안이 '비난 회피전략'으로 언급되는 이유다. 이처럼 효과가 대폭 떨어지는 안에 대해서도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자정 능력은 있는 것인지 의구심도 든다.
필자는 1999년 9월 『보건복지포럼』에 자동조정장치를 소개했다. 하루빨리 도입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런데 정부안의 제일 늦은 도입 시점은 2054년으로 30년 후다. 그것도 연금 받을 사람의 물가 상승 연동 부분에만 손을 대는 것이다. 연금 받는 기간을 25년으로 설정했으니, 100% 효과가 나타나려면 55년 이후다. 그런데도 정부안을 속이 빈 '깡통연금'이라 한다. 여기에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2018년 4차 국민연금재정계산부터 필자가 주장해 온 자동조정장치는 첫 연금이 삭감되는 자동조정장치다. 가입자 자신과 직접 연관된 기대여명 증가 추이에 맞추어 그만큼만 연금액을 삭감하는 방안이다. 생애 받을 총연금액은 차이가 없으나, 오래 살아 연금 받는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만 매월 연금액에서 차감하는 핀란드 방식이다. '퇴직 후 재고용' 등 노동시장 개혁으로 현재 59세인 의무납입연령을 64세로 5년 연장하면 소득대체율이 10% 이상 더 늘어나게 되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할지라도 연금액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이 받을 첫 연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야 세대간 공정성을 다소나마 개선할 수 있다. 그런데 제일 늦은 도입 시점이 2054년으로 30년 뒤이다 보니, '보험료 3%에 소득대체율 70%'를 적용받은 필자와 같은 1차 베이비붐 세대는 누릴 것 다 누리고 아무런 고통 분담도 없이 세상을 떠날 확률이 높다. 정부가 제시한 자동조정장치가 '책임회피'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최근 '연금개혁청년행동'의 여론조사에서 31.3%, MZ세대 경우에는 47%가 국민연금 폐지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노라면, 제대로 이해나 하고 저러는 건지 의문이 가득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편이 가능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 캐나다'는 지난 20년 동안 보험료를 9.9% 내며 소득대체율은 25%만 약속받았다. 그런 캐나다에 재정 불안정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캐나다는 "정치권에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3년 안에 재정 불안정 요인의 50%를 강제 해결하는 법 조항이 있다." 3년 뒤 추가 조치도 있다.
연금연구회 옥동석 인천대 명예교수(전 조세재정연구원장) 고언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자를 국가재정에서 보전하지 않더라도 국가채무 비율이 2070년 180%를 넘어선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남의 돈이라고 무책임하게 결정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의 연금지급보장 이전에 의사결정자들인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재산부터 담보로 내놓아야 한다." 국회 추정치(2070년 180%)에는,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을 채택할 경우, 2093년 GDP 대비 483.6%(연금연구회의 전영준 한양대 교수 추정)에 달하는 미적립 부채가 제외되었다.
지난 22일 조국혁신당의 김선민 의원은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에 대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24일 논평을 냈다. "김선민 의원과 조국혁신당은 시민의 뜻을 존중한 법안을 발의하며 국회의원으로서 민의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금행동은 다시 한번 법안 발의를 환영하며, 공적연금으로 국민의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연대와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노동과 세계. 2024.10.25.) 이는 "2005년생(14.8%)과 2035년생(36.1%)의 생애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이 21.3%포인트나 차이 나고, 부과방식 보험료가 43.2%까지 치솟는 개악안"을 환영한다는 뜻이다. 보험료 13%에서의 수지균형 소득대체율이 26.3%이다 보니, 낸 거보다 23.7%포인트나 더 받게 발의했는데도 말이다. 그토록 자동조정장치를 공격했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보니 더욱 기가 막힐 것 같다!
왜곡된 자료로 시민대표단을 학습시켜 나온 결과를 수용하라며 이해관계자와 국회의원이 함께 시위하는 모습이 2024년 OECD Pension Expert Meeting의 필자 발표자료에 사진으로 첨부되었다. 이 상황에 대해 외국 전문가들, 즉 핀란드 연금연구센터의 이즈모 실장과 미카 담당관, 노르웨이 통계청 크루제 박사는 "한국 연금제도가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매일 885억씩 국민연금부채가 쌓여간다고 정부도 인정했다. 정부안 비판에 앞서 자신들이 자동조정장치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부터 성찰하기 바란다. 이는 시기상조를 들며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비판하는 연금 전문가들에게도 해당이 된다. 국회의원이라면 현재와 미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본 뒤, 고뇌에 찬 발언을 해야 한다. 그런 일 하라고 국민이 그 자리에 보냈다!
윤석명 (보건사회硏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