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원전 규모, 미·중·프·러 이어 5위
사용후핵연료 저장량도 세계 5위 규모
기본계획도 있지만 국회 문턱 넘지 못해
"미래세대 전가해선 안돼…법제화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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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명동에서 한국에너지문화정보재단이 주최한 '제4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지역 순회설명회'에서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은 "원전을 가동한지 약 반 세기가 지났지만 원전 부지 내에 폐기물을 쌓아두고만 있다"며 "2016년 세운 기본정책과 2021년에 정립한 기본정책이 진보·보수 정부에서 각각 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챗바퀴 돌 듯 하지 말고 이제는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학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총 26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94기) △중국(56기) △프랑스(56기) △러시아(36기) 등 세계 5위 수준이다. 사용후핵연료 저장량도 세계 5위(1만6925톤)를 기록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량은 2020년 초 대비 지난해 말 기준 3000톤이 증가했다. 이처럼 사용후핵연료가 증가하면서 오는 2030년부터 한빛원전이 가동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용후핵연료 규모는 세계 5위 수준이지만 전 세계 주요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진전이 없다. 주요 국가들은 첫 원전을 가동하고 6~20년 후 바로 사용후핵연료 처분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핀란드는 1997년 원전을 도입한 후 6년이 지나 법제 정비를 완료했다. 내년 운영을 목표로 현재 시운전 중이다. 스웨덴도 2009년 부지선정을 마치고, 내년 건설 착수를 한다. 이 외에 △프랑스(2010년 부지선정) △스위스(2022년 부지선정) △미국(2002년 부지선정 및 재검토) △캐나다(내년 부지선정 예정) 등 해외 국가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 학회장은 "다른 나라들은 원전을 도입하면서 얼마 안 지나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본 방향과 정책을 결정했다는 것이 큰 차이"라며 "핀란드도 30~40년 동안 여러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2016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제20대 국회부터 고준위 특별법이 꾸준히 발의되고 있지만 여야 간 정쟁으로 자동폐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22대 국회에서도 총 5개의 특별법이 발의돼지만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고준위 방폐장이 필요한 이유는 원전 가동 중단을 막아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방사능을 갖고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인간의 생활권에서 영구히 격리해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습식저장조와 건식저장조에서 원전 밖 부지의 영구처분시설로 옮겨야 한다. 영구처분시설은 지하 500m를 뚫어 암반에 사용후핵연료를 담은 용기를 차곡차곡 담아 영구히 묻는 곳이다. 아울러 유럽 수출을 위해서 2050년까지 고준위방폐장에 관한 법제화를 해야 한다.
정해룡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고준위기획실장은 "유럽은 택소노미를 통해 2050년까지 방폐장 관리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은 이미 2011년부터 영구처분장 등 구체적 관리시설 확보 의무화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우리가 쓰는 전기를 미래 세대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 세대 갈등을 방지하는 차원도 있지만, 탈원전 등 정책영역과는 무관하게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필수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날 영구처분시설에 대한 기술개발 수준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부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술 로드맵'을 발표하고 2030년부터 기술 실증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손희동 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 사업기획팀장은 "아직 기술이 많이 부족하지만, 2029년까지는 책임지고 기술개발을 완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