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에이전트로 남미와 한국 연결하는 가교 역할
에이전트 꿈꾼다면 "운동장 찾아 경기 많이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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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랑은 어떻게 관련을 맺었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했다. 해외에서 30살에 은퇴하고 바로 에이전트를 시작했다. 지금 19년 차다."
- 선수 생활을 어디서 했나.
"숭실대 졸업(95학번)하고 포항에 갔는데 한 경기도 출장 못하고 바로 그만뒀다. 병역 마치고 남미로 가서 5년 선수 생활하고 은퇴했다."
- K리그에 대한 미련이 지금도 남아 있나.
"없다면 거짓말이다. 정말 뛰어보고 싶었는데 운동장에 들어갈 기회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또 그만큼 노력을 안 했었다."
- 남미는 어떻게 가게 된 건가.
"현역 생활의 미련이 남아 지인의 소개로 테스트 받으러 혼자 들어갔다. 6개월 동안 브라질 등 남미의 이팀 저팀 찾아가서 '테스트 좀 볼 수 있냐'고 했다. 파라과이 2부 팀에 입단해 6개월을 있었고, 그다음에는 1부 팀으로 가서 4년 동안 더 뛰고 만 서른에 은퇴했다."
- 에이전트 생활은 어떻게 시작했나.
"파라과이 클럽 회장님이 권유했다. 그때만 해도 브라질 선수들 말고는 한국에서 수입한 선수가 없었다. 파라과이 선수들을 많이 밀어줄 테니 에이전트를 해보라고 하셔서 은퇴 후 우연히 시작했다."
-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면.
"제가 데리고 온 선수가 큰 활약을 했을 때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2012년 전북 현대에 입단, 10골 9도움을 기록한 드로겟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칠레 국가대표 선수였다. 국내 선수로는 김신욱이다. 울산 현대시절 첫 2년인 2009~10년까지 제가 구단과 연봉 협상을 했다."
- 지금 현재 관리하는 선수는.
"K리그는 부천의 루페타(포르투갈/콩고민주공화국), 성남의 코레아(포르투갈/기니비시우)다."
- 포르투갈과 비즈니스가 많다.
"맞다. 남미권 선수들을 포르투갈에 많이 넣고 있다."
- 한국 선수만 수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남미 선수들 수출입까지 하나. 어떻게 보면 한국 축구의 세계화, 국제화의 선두 주자인 듯 하다.
"너무 과한 표현이신 것 같다. 아무래도 제가 남미 쪽에 오래 있었다 보니 당시에 저랑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이 1부, 2부팀 감독도 하고 구단에 임직원으로 있다. 그쪽 구단 선수들을 제가 데리고 유럽 시장에 가서 세일즈한다."
- 남미 선수인데 에이전트는 한국 사람이다. 뭔가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되는 그림이다.
"현지의 파트너와 제가 협약을 맺어서 하는 일이라 저 혼자만의 선수는 아니다. 각자 전문성을 발휘하는 협업의 재미가 있다."
- 에이전트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준다면.
"무조건 운동장을 많이 찾아와서 경기를 봐야 한다. 에이전트는 선수를 발굴 하는 직업이다. 남들이 '저 선수 괜찮다'라고 해도 어떤 부분이 괜찮은지를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한다. 운동장을 자주 찾아 선수들 뛰는 모습을 자꾸 보면 선수를 보는 안목이 트일 것이다."
-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중남미권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좋은 선수들이 너무 많다. 기회가 된다면 남미 각 나라의 어린 선수들, 17~18세 선수들을 미리 수급해서 육성하고 싶다. 한국의 좋은 환경에서 선수들을 육성하는 프로젝트다. 2~3년만 지나면 그 선수들의 잠재력이 폭발할 것이다. 큰 금액 들이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선수뿐 아니라, 남미 선수들도 수출 수입하고 싶다. K리그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도 얼마든지 고객으로 삼을 수 있다. 선수라는 상품을 전세계에서 조달해 전세계에 팔 수 있다면, 한국 축구의 위상도 올리고 한국 축구의 산업화에도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김원진은...
마산 중앙중, 마산공고, 숭실대를 졸업했다. 포항 스틸러스에 스카우트되었으나 K리그 출장 기록은 없다. 공익요원으로 병역을 마치고 반 년 동안 모교 마산 중앙중 코치를 하다 남미로 날아갔다. 5년간 파라과이 프로리그에서 활약한 후 만 30세에 축구화를 벗었다. 현재 링크 매니지먼트 대표로, 축구 관련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아시아투데이 장원재 스포츠전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