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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인터넷(WWW)이 열리고 본격적인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쏟아지는 이미지와 자극적인 영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고 보면 '텍스트 힙'은 릴스나 쇼츠 화면 속 디지털 이미지 대신 종이책, 즉 텍스트를 읽는 것을 선택하는 아날로그적 현상임과 동시에 이미지와 텍스트,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즘 세태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서의 갈등에 대한 질문은 인터넷 시대가 열리기 훨씬 전인 1960년대 미술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벨기에 출신의 예술가 마르셀 브로타스(Marcldrude Broodthaers, 1924~1976)의 작품 '비망록'(1963)은 대표적인 예이다.
본래 시인이었던 브로타스는 40세에 돌연 미술가로 전향하면서 당시 발간된 자신의 시집 중 팔고 남은 마지막 50권을 석고 덩어리 속에 집어넣고는 그것을 하나의 조각으로 선언했다. '비망록'이 바로 그것이다. 읽어야 하는 시집들이 시각적 대상으로 변모하고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것이 됐다는 점에서, 브로타스의 행위는 관람자에게 왜 깊이 있는 문장과 읽기 행위, 즉 독자가 되길 거부하고 대신 이미지 소비자인 관람자가 되고자 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대중소비사회의 극성기에 브로타스의 '비망록'이 제기하는 복잡하고 미학적인 여러 논쟁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읽는 텍스트와 보는 이미지 간의 차이에서의 대중의 갈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일 것이다.
한편 시인이었던 이력 때문인지 브로타스의 또 다른 작품 '비(텍스트를 위한 프로젝트)'(1969) 역시 텍스트와 이미지의 문제를 전면화하고 있다. 16㎜ 흑백영상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야외에 앉아 흰 노트에 짙은 잉크 펜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브로타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갑작스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브로타스는 글씨 쓰기를 계속한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글씨는 번지고 지워진다. 그럼에도 그는 글씨를 쓰고 또 쓰고 있다. 비로 인해 글쓰기는 불가능하며 텍스트는 결코 완성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영상은 2분 동안 재생을 반복한다.
이 작품에서 브로타스는 흔적, 기억 등으로 남거나 새겨져야 할 '텍스트'와 그것을 지우는 '비'를 통해 전통적인 텍스트의 자기확정적 고정적 존재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미지로서의 해방감을 부여하려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쏟아지는 비가 텍스트를 지우는 순간, 텍스트는 비로 인해 이미지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브로타스는 이미지 폭증의 시대와 자기 확정적 텍스트 사이에서 시인이자 미술가였던 이력의 특별한 정체성으로 텍스트와 이미지가 지닌 모순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그 갈등을 봉합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텍스트 힙' 유행이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소위 '인싸'들의 '자기과시' 수단일 뿐이며, '지적 허영'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반면 성인들의 문해력이 문제로 떠오르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텍스트 힙'유행이 인증샷 이상의 독서 열풍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기대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뉴스를 통해 보도된 청소년 및 성인들의 문해력 논란은 사실상 심각한 수준이다. 예컨대, 첫 시작 지점을 뜻하는 '시발점(始發點)'을 욕으로 이해한다거나, '족보(族譜)'를 '족발보쌈세트'로, 머리카락을 뜻하는 '두발(頭髮)'을 '두 다리'로 이해하는 등 여러 사례가 보도되었다. 이러한 문해력 저하의 원인은 스마트 폰, 게임 등 디지털 매체 과다 사용을 1순위로 꼽는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져 온 '텍스트 힙' 현상이 이미지의 폭증 시대에 깊이 있는 사고와 성찰로 이어지는 책 읽기로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사유와 토론, 변증법적 성장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귀 기울일 때 가능할 수 있다.
김주원 (큐레이터·상명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