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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렸을 적 바랭이는 참 고마운 존재였다. 들판에 나가 소에게 풀을 뜯길 때 소들은 바랭이를 유독 좋아했다. 바랭이가 수북한 곳이 눈에 띄면 마치 횡재를 한 것처럼 신이 났다. 소는 빵빵하게 배를 불릴 것이고, 아버지는 소를 몰고 귀가한 나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칭찬을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바랭이의 또 다른 이름은 '우산풀'이다. 바랭이 꽃이삭으로 우산놀이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에도 바랭이 우산을 만들어 노는 아이들 사진을 접할 수 있어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가축의 사료로, 밭의 퇴비로, 대기근 시절에는 인간들의 먹거리로 자연계에 기여해 온 바랭이는 선조들에게 참 친근한 풀이었던 것 같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그림 여러 곳에 바랭이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겸재 정선의 초충도와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연꽃 그림에도 어김없이 바랭이가 등장한다. 볼품없는 바랭이가 어떻게 그 귀한 그림들의 소재로 선택이 되었을까. 아마도 바랭이의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에 대한 찬미(讚美)의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만화가·前 중앙선관위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