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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치인의 개인 SNS 글도, 성명문도 아니다. 지난 7일부터 진행 중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법원, 법무부 등 증인들을 대상으로 나온 질문들이다. 어떤 의원은 주어진 발언 시간동안 '단 하나의 질문'조차 묻지 않고, 정치적 견해를 담은 '본인 말'을 전도하는 데만 집중했다. 애당초 답변을 듣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란 듯이.
지난 7일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재판지연과 관련해 현황과 원인, 해결을 위한 사법부의 노력에 대해 설명하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시간관계상 나중에 서면으로 작성해서 제출해 달라"며 중단한 일도 있었다. 직후 이어진 의원들의 질문은 "이재명 재판 신속히 해 달라"거나 "공천 개입 의혹 심각한 범죄라 보는데 입장이 어떻게 되는가" 등이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특정 사안에 대해 단정적인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다"는 원론뿐이었다.
국정감사 이전인 지난달 10일 열린 김복형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더 심각했다. 후보자에 대한 질문은 사실상 없고, 오로지 정치 현안들에 대한 질문만 오갔다. 김 후보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후보자는 안중에도 없는 여야 의원들끼리 언성을 높이다가 충돌을 빚기도 했다.
국정감사의 의의는,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자료·정보를 획득하며 국정에 대한 감시·비판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적발·시정한다는 데 있다. 즉 삼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부로서 다른 두 축인 사법부와 행정부의 '감사'를 맡은 것이다. 인사청문회 역시 청문을 통한 후보자 검증이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서 진정한 '감사'와 '청문'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감사를 한자로 풀어보자면 감독하고(監) 조사한다(査)는 의미고, 청문은 듣고(聽) 듣는다(聞)는 말이 겹쳐있다. 단어 풀이에서 알 수 있듯 두 절차 모두 면밀히 살펴보고 적절한 질문을 던진 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지금 의원들은 증인을 명분 삼아 '본인 말'을 '전도'할 생각만 앞서고, 답변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법사위 위원들은 본인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저버려선 안 된다.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국익우선 의무' 등을 준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어려울 것도 없이 국정감사와 청문회가 가진 본래의 의의에 맞게 충실히 이행하면 된다. 국민을 대표해 투표로 앉은 자리인 만큼,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잠시 잊고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