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스님, 12개 문도 지지 영향 커...총림 화합 과제
대원스님도 화합 강조 "한 몸으로...수행이 본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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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 해인사 보경당에서 30일 오후 2시에 열린 산중총회는 총 636명(비구 530명, 비구니 106명)의 구성원 중 485명 참여로 성사됐다. 이날 산중총회에서는 제10대 해인총림 방장 선출을 위한 무기명 비밀투표를 진행했다.
대원스님은 이날 경선을 통해 추천됐다. 경선으로 방장을 추천한 것은 1967년 해인총림 설립 이후 원각 방장 때(2015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과거 해인총림은 초대 방장 성철스님 이후 선거 없이 추대하는 전통이 있었다. 향후 11월 5일 열릴 조계종 중앙종회 정기회에서 추대 과정을 거쳐 해인총림 제10대 방장에 취임하게 된다.
방장 임기는 10년이다. 원각스님의 방장 임기는 2025년 3월 17일까지다. 방장은 강원·선원·율원을 갖춘 큰 절인 총림 최고 어른으로 본사(해인사) 주지 추천권을 가지고, 말사 주지 임면에도 관여할 수 있다.
대원스님의 승리는 해인총림 내 12개 문중 문도로 구성된 추대위원회의 지지를 받은 것이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대위원회는 용탑문도·백련암·원당암·지월문도·동곡문도·길상암·고봉문도·희랑대·지족암·도림문도 등 12개 문도 40여 명으로 구성됐다. 추대를 주도한 공동위원장 학성스님(해인승가대 총동문회장)을 비롯해 원오스님(전 육군본부 군종감), 향적스님(전 해인사 주지), 도오스님(함양불교연합회장) 등이 주요 인사다.
반대로 원각스님은 선용·원학스님을 비롯한 12명의 해인사 원로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성추문으로 산문출송(山門黜送·죄를 범한 승려를 절에서 내쫓는 것)당한 전 주지 현응스님 관련 문제에 있어서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원각스님과 원로들의 지지 호소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는 산중(山中) 민심의 이반(離反)으로 드러난 셈이다.
대원스님은 향후 해인사의 분열을 해소하고 총림을 안정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현 주지인 혜일스님과는 같은 방향이란 점은 대원스님에게 유리한 면이나 반대편에 섰던 원로들과 원만한 화합이 요청될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는 삼보(三寶)사찰 중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법보(法寶)사찰로, 조계종 교구 가운데 특히 중요한 곳이다. 재적 승려가 가장 많은 곳이며 이 때문에 조계종 입법기구인 중앙종회 교구 의석수로 해인사 몫은 다른 교구(2석)보다 1석이 더 많은 3석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성철·고암·혜암·법전스님 등 조계종 종정도 제일 많이 배출한 명문가(名門家)다.
그러나 월하·경봉 2개 문도 중심으로 운영되는 영축총림 양산 통도사와 달리 12개 문도가 여러 암자 등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대중 화합이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이를 의식한 대원스님은 방장 추천에 대한 감사인사 후 첫 일성으로 화합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마음으로 해인총림이 빛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화합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해인총림 스님들이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고 본분사로 삼아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학산당 대원스님은 1956년 고암스님을 은사로 상주 남장사에서 출가했다. 1958년 사미계를, 1962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66년부터 1986년까지 효봉, 금오, 고암, 전강, 경봉, 성철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참방하며 수행 정진했다. 1988년 고암스님 입적 후 유지를 받들어 옛 제석사 터에 현재의 공주 학림사를 창건했으며, 1995년 오등선원을 개원하고 조실로 추대돼 후학을 지도했다. 또한 2001년 오등시민선원을 개원, 2010년 전국선원수좌회 수석대표에 추대됐으며, 2013년 해인총림 서당수좌에 위촉됐다. 2014년 대종사 법계를 품수,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소임을 맡았다. 법어와 강설집으로는 '철벽을 부수고 벽안을 열다' '진흙 속에서 달이 뜨네' '조주록 강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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