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역할
1심 징역형 집유→2심서 무죄 뒤집혀
"범죄에 대한 미필적 고의 인정 안돼"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2003년생인 A씨는 만 18세이던 2022년 7~8월 사이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일당과 공모해 7회에 걸쳐 총 7800만원을 지정된 계좌로 송금하는 '현금수거책'으로 활동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중 '캔들 포장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공고를 낸 회사 사장은 A씨에게 "코로나19로 인해 아르바이트 채용을 못 하게 됐다"며 대신 재무설계 회사의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했다.
텔레그램을 통해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전달받으면 100만원씩 쪼개 무통장입금 방식으로 송금하고, 일당 13만원을 받는 일이었다. A씨는 이 같은 일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직접적으로 가담했을 뿐만 아니라 편취 금액도 크다며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및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범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A씨의 입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재무 설계 회사의 단순한 사무보조 업무로 믿었을 여지가 다분하다"며 "범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주관적 고의를 쉽게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다만 법원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매번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아니다. A씨와 비슷한 사안으로 기소된 40대의 경우엔 유죄가 선고됐다. 이 사건 담당 재판부는 "일면식 없는 사람의 지시로 수거한 현금을 소액으로 쪼개 대행 입금하는 일이 보이스피싱에 연루될 수도 있다고 당연히 의심할 만한 사회 경험이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