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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과 제법 친하다고 생각하며 지금껏 지냈다. 그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대는 바람이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서운했다. 섭섭했다. 나중엔 화가 났다. '어떻게 못알아볼 수 있을까!' 분한 마음에 나 역시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우린 그렇게 '모르는 사이'로 헤어졌다.
어느 밤, TV에서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솔직히 메달 따지 않으면 금방 잊혀지거든요. 많이 서러운데 열심히 또 준비해야죠. 꼭 메달 따겠습니다. 다음엔."
파리 올림픽 역도 남자 73㎏급에 출전했던 박주효(27)였다. 박주효는 2년 전 허리를 다쳤다. 장애 5급 판정을 받았지만 재활훈련 후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했다. 인상 147㎏, 용상 187㎏, 합계 334㎏를 들어 7위로 경기를 끝낸 직후 인터뷰였다. 세계 7위. 결코 가벼운 순위가 아니다. 하지만 아쉬운 결과에 그는 울먹였다. 어려움을 이겨낸 그의 기백과 도전은 메달 못지 않은 울림으로 남았다.
그런데 '금·방 잊·혀·지·거·든·요.' 곱씹을수록 여기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참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 무엇보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과 섭섭함, 잊히는 것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이 읽혔다.
따지고 보면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산다. 어느 시인은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에게, 관계 속에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한다고 은유했다. 해서 누군가를 관계에서 손쉽게 밀어내려면 '그'를 기억에서 지우면 된다. 관계에서 배제되면 지울 수 없는 생채기가 남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잊는다는 것은 그 어떤 가혹행위나 폭력보다도 상대를 아프게 하고 고통을 오래동안 지속시킨다. 그랬나보다. 부동산 사장님과 '모르는 사이'로 헤어진 그날, 유난히 헛헛했던 것은 조금 '아파서'였을 거다.
사라지는 것, 잊혀지는 것에 대해 사회는 자꾸 무던해진다. 그럴수록 기억하려는 노력들은 옹골지고 치밀해진다. 이런 사회에서 '관계의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은 '그'를 기억하며 관계에 늘 포함하는 것, 그리고 그런 의지일 지 모를 일이다.
2024 파리 패럴림픽이 오는 28일(현지시간) 개막해 9월 8일까지 이어진다. 누구보다 쉽게 잊힐 지 모를 83명의 대한민국 선수(임원 94명)들이 투혼을 불사르고 각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무더위를 잊게했던 올림픽의 환희화 감동을 이들이 재현하길 기대한다. 하나만 더 추가하고 싶다. 오래오래 기억하겠다는 약속! 잊지 않는 것은 가장 멋진 선물이자 최선의 응원이기에. 이러면 메달을 따든 못 따든, 선수들 모두 '꽃'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