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리필 성행 가운데 리필 횟수 적정선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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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손님들이 식당을 가득 메웠지만 가게 주인 최모씨(53)는 그리 밝게 웃지 않았다. 최근 식자재 물가가 크게 올라 손님들이 소고기 두 판(한 판에 900g)만 더 달라고 해도 손해이기 때문. 최씨는 "겨우 유지만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섣불리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고 리필 횟수를 제한해 손님과 갈등을 빚기는 더더욱 싫다"고 설명했다.
고물가에 무한리필 음식점이 성행하고 있지만 음식 '리필 횟수'를 두고 최근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무한리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리필 횟수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과 무한리필이어도 가게의 재룟값 부담을 이유로 리필 횟수에 적정선이 있다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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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물가 상승률은 전년동기 대비 3.0%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4%)보다 0.6%포인트 높다. 외식물가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 평균을 상회한 건 2021년 6월부터 37개월째다. 코로나19 이후 높아진 외식 물가에 소비자들은 1~2만원 대의 가격으로 고기·초밥을 양껏 먹을 수 있는 무한리필 가게를 찾는다.
리필 횟수에도 적정선이 있다는 입장도 있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최주영씨(25·여)는 "평소 친구들끼리 밥을 먹을 때 무한리필 집을 가끔 찾지만 많이 먹지 못해 자주 가진 않는다"면서 "리필 횟수에도 매너가 있다. 초밥집에서 170 접시의 초밥을 먹다 쫓겨난 사례는 좀 아니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자영업자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난해 '인당 5만원 무한리필 회전초밥집에서 170접시 먹고 쫓겨난 손님 사연'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친구 2명과 함께 100분 동안 무한리필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았지만 3명이 60분만에 170접시를 먹자 사장이 '그만 나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후 업주와 A씨는 각각 영업방해죄, 사기죄를 내세우며 대립하기도 했다.
법조계는 실제 법적 다툼이 이뤄졌을 경우 양측 모두 범죄사실을 입증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유정훈 IBS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무한리필집에서 많이 먹고, 그것을 이유로 쫓아낸 것을 각각 업무방해, 사기로 보기는 어렵다. 민사소송도 어렵다"면서 "이러한 사례를 막기 위해선 100 접시 이상은 제공이 어렵다는 구체적 제한 조항을 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업주들이 무한리필이라고 홍보하는 것은 거래 과정에서 허용되는 과장"이라면서도 "손님이 초밥을 170접시 먹거나 고기를 3~4판 리필하는 행위는 가게에 손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다분해 '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긴 사례"라고 비판했다. 민법 제2조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쫓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어 "선진국형 사회는 거래 당사자들 간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에, 우리나라도 소비자와 업주들이 서로 배려하는 거래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