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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표로 중국산 흑연에 크게 의존해 온 국내 배터리 업계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무엇보다도 500억 달러에 달하는 북미지역 배터리 투자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걷히게 됐다. K-배터리의 미국 선점 투자로 미 IRA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의 약 70%가 K-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공급망의 현실을 고려한 미국 정부의 실용적 접근은 미국 내 전기차 보급과 배터리 생태계 투자를 가속화하는 한편, 지속가능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이번 미국 정부의 결정은 배터리 공급망의 탈중국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 우리 완성차·배터리 업계는 2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지만, 흑연 등 핵심광물의 탈중국이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아프리카, 북미지역 등으로 흑연 광물 공급국가의 다변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정부 영향력이 큰 아프리카 국가와는 민관 합동 자원협력을 강화하고, 미 IRA 관련 우호세력 확보 차원에서 북미지역 흑연 기업과의 공급망 파트너쉽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흑연 음극재의 국내 생산에 대한 정부 지원도 실효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국내 흑연 생산은 높은 전력 비용, 오폐수 처리 등의 사유로 중국산 흑연에 비해 원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급망 안보 차원에서의 파격적인 지원방안이 검토돼야 할 것이다.
실리콘 음극재, 리튬메탈 배터리 등 흑연 대체 R&D는 중장기 공급망 대책으로 유용하다. 현재 배터리 분야에 대한 정부의 R&D 지원은 자동차의 7분의 1, 반도체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산업부의 올해 배터리 R&D 예산이 525억원인데, 이를 두 배 이상으로 늘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용 후 배터리의 재활용 촉진도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를 위해 긴요한 과제이다. 업계는 폐기물 관리, 규제 중심이 아닌 시장 중심, 산업 생태계 조성 차원의 사용후 배터리 법제화를 건의한 바가 있다. 정부와 국회가 업계 건의를 적극 수용해 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우리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캐즘과 중국기업의 가격·물량 공세에 맞서면서,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속도·체감·현장 중심의 정부 지원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