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니아 등 학생 단체관람 인기
특별전 개최 등 '멋진 마무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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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추억은 떼려야 뗄 수 없는사이다. 특정 공간이 사라지면 여기에 얽힌 나만의 추억도 덩달아 사라지는 기분이다. 개인적으론 극장, 그중에서도 복합상영관 이전 단관 시절의 극장이 그렇다.
66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오는 9월 30일 문을 닫는 대한극장은 서울에서 중·고교를 다닌 지금의 50대 이상 중장년층 관객들한테는 꽤 특별한 장소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구에겐 강압적이고 획일적이었던 그 당시의 교육 환경을 떠올리게 하면서, 영화 보는 재미를 함께 일깨워 준 곳이다. 2002년 복합상영관으로 모습을 달리하기 전까지 대한극장은 70㎜ 필름으로 제작된 작품을 영사 시 화면의 훼손 없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대형 상영관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아라비아의 로렌스' '킬링 필드' '마지막 황제' 등과 같은 할리우드 대작들이 주로 개봉했고, 덕분에 영화 마니아들은 물론 교복 입은 학생들의 단체 관람도 다른 극장들에 비해 자주 이뤄졌다. 1989년 2월로 기억한다. 봄방학 시작을 앞두고 '개점휴업' 상태로 접어든 학교는 수업 대신 대한극장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 단체 관람을 지시했다. 늘 그렇듯 담임 선생님은 "중간에 다른 데로 튀면 가만 안 둔다"며 엄포를 놓았고, 학생들은 상영 전까지 제목의 '황제'가 '엠퍼러(Emperor)'냐 '킹(King)'이냐를 두고 욕설을 주고받으며 다툴 만큼 영화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웬일! 어린 푸이가 아장아장 걸어가 자금성의 궁정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선 절로 탄성을 쏟아낼 만큼 영화에 푹 빠져들었고, 한·중 수교 전인 그때만 해도 '중공'이란 국명으로 더 익숙했던 중국이란 나라가 난생 처음 궁금해진 계기였다.
이처럼 세계를 바라보는 한 고교생의 시야는 물론, 어쩌면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를 장소가 사라진다고 하니 추억의 일부를 가위로 싹둑 오려내는 듯한 느낌이다. 인근의 서울극장과 단성사, 명보극장, 국도극장, 스카라극장이 먼저 없어졌을 때보다 더 서운하다.
폐관 소식에 '이럴 바엔 차라리 단관 형태로 그냥 남지 그랬어' 하는 아쉬움도 든다. 복합상영관으로 바꾸는데 큰돈 들이지 않는 대신 단관으로서의 역사성과 차별성을 강조하고, 소규모 공연과 콘서트 개최를 겸할 수 있도록 사운드 시설을 보강했다면 어땠을까. 순진하고 부질 없는 발상이지만 말이다.
대한극장이 한국 영화계에 남긴 발자취를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고별전 등 멋진 '이별의 의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해당 지자체 혹은 관공서가 적자 누적에 허덕이는 운영사를 도와도 좋을 듯싶다. 반백년 넘게 우리와 함께한 '시네마 천국'인데, 앞서 사라진 단관들처럼 공식적인 마무리 없이 자취를 감춘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