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이경욱 칼럼] 국회의원, ‘돈 보다 명예’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files.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212010005151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2. 12. 17:52

이경욱 대기자 사진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올해 국회의원 세비, 즉 급여가 지난해보다 1.7% 올라 1억5700만원으로 책정됐다. 국회의원 직무에 비하면 적을까, 많을까. 세비 인상 소식에 달가워하지 않는 국민이 많다면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국회의원은 입법부 구성원이다. 법을 만드는 국민 대표로서 개인이지만 헌법기관이다.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지역 여론을 수렴해 법에 반영한다. 다시 말해 모든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존재다.

그러기에 엄격한 윤리 의식과 부지런함, 냉철한 판단력, 국가 미래에 대한 통찰력 등 남다른 면모가 요구된다. 국회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거는 기대도 그만큼 크다. 국민과 만남이 업무 속성이기에 때로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린다. 국정조사나 돌발적 현안이 돌출될 경우 귀가를 못 하기도 한다.

법 제정 권한을 지녀 유혹도 클 것이다. 국민은 물론이고 기업의 생존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대관(對官)담당' 직책을 만들어 놓고 국회의원 및 보좌관과 소통채널을 열어놓고 있다.
전해들은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생전 일화. 어느 날 새벽 계열사 사장들을 모두 안양CC에 불러 모았다. 꼭두새벽이라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다들 앉았다. 이 회장은 대뜸 "당신들은 국회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 법 제정 동향을 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구(字句) 하나에 기업의 명운이 바뀔 수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런 국회의원의 세비는 우상향이다. 국회의원은 다수의 보좌진을 거느린다. 국회의원 1명에 투입되는 국민 세금은 결코 적지 않다. 특권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불경기에다 생활 물가가 치솟는 마당에 세비 인상은 반갑지 않은 뉴스일 게다.

이런 가운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개인 견해를 전제로 세비를 국민 중위소득 정도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고 단순한 고위공직자가 아니라고도 했다. 임무가 중하고 영예가 높으니까 세비도 높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직역이기에 상징적으로 국민 중위소득 정도를 세비로 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위소득(국민 가구소득의 중간 값)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540만원이었다. 세비 삭감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아는 그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야권은 수십 년도 더 된 얘기를 지금 와서 재탕·삼탕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스웨덴 등 서구 유럽 국회의원들은 여러 명이 보좌관 1명의 도움을 받아가며 '박봉'에도 밤늦도록 스스로 입법 활동을 하는 등 고생을 자처하면서도 '법을 만든다'는 명예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들었다. 검은색 차량을 타고 내리는 대신 자전거에 의지해 분주히 민원 현장을 오간다고 한다. 선단(船團) 같은 보좌진을 거느리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동분서주하면서 박봉에 만족하는 이유는 바로 명예에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법의 틀 안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국민의 일상생활은 법에 따라 규정된다. 그래서 국민 삶의 질은 국회의원의 자질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국회의원의 직무는 명예직에 가깝다고 해야 맞다. 모든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로지 국민을 최우선시하며 직무에 충실히 임하는 게 옳다.

이제 국회의원은 '돈(특권 포함)보다 명예'에 더 가치를 두는 쪽으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 국민은 그걸 바란다. 국민의 의식은 세계 최고 국가그룹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민 의식 수준 향상에 걸맞게 구태의연한 특권에서 벗어나 부지런히, 그리고 오로지 국민을 위한 입법 활동에만 전념하기를 국민은 원한다. 진정으로 존경받는 입법기관의 길은 그다지 멀지 않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