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최준선 칼럼]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문 법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files.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129010017156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1. 29. 18:08

2023122801003215500176381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우리는 사실을 잘못 아는 경우가 흔히 있다. 게을러 공부를 덜 했거나 가짜뉴스에 속아서 잘못 아는 경우도 많다.

◇'보스톤 차 사건'의 진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미국 독립운동의 시초가 되었다던 '보스톤 차 사건(Boston Tea Party)'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전모를 잘못 알고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이 영국이 미국 식민지로부터의 차 수입에 세금을 부과해서 발생한 것으로 보통 알고 있다. 사실은 정반대다. 부과하던 세금을 폐지해서 발생한 사건이다.

세금이 없어지자 지금까지 세금을 피해서 차를 밀수해 짭짤한 수익을 얻었던 밀수업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사람들은 같은 값으로 밀수품 대신 세금이 빠진 정품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조세에 관한 결정을 하는 행태 자체에 반발한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과 이 밀수업자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사건이 보스톤 차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마이클 킨 국제통화기금 공공정책 부국장과 조엘 슬램로드 미시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공동 저술한 책 "Rebellion, rascals, and revenue: tax follies and wisdom through the ages"(반란, 악당, 그리고 세수: 시대를 관통하는 세금의 어리석음과 지혜/필자 번역)를 홍석윤씨가 번역한 『세금의 흑역사』(세종서적, 2022)라는 책 22면 이하 32면까지에 설명돼 있다.
◇평범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다른 한 가지 예는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년 11월 2일~1793년 10월 16일)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누구인가는 저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년 11월 28일~1942년 2월 22일)의 책에 소개돼 있다. 시중에는 번역서로,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박광자·전영애 옮김, 청미래, 2005)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 혁명』(육혜원 옮김, 이화북스, 2023) 두 종이 나와 있다. 두 책은 같은 원서를 번역했지만, 앞의 책은 본문이 538면인데, 뒤의 책은 축약본으로 본문 320면으로 구성돼 있다. 앞의 책이 당연히 자세하다.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해 그동안 오스트리아 문서보관소에 공개가 금지되었던 여러 사료를 발굴하여 전기를 썼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그녀의 일대기를 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의 책(청미래, 2005)을 기준으로 얘기하기로 한다. 10면 서문에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단순·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일 뿐이었다. 마성(魔性)을 과시할 소양도 없고 영웅적 행위를 이룰 의지도 없으며, 따라서 비극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인물이다."

14세에 결혼하여 프랑스로 건너온 오스트리아의 신부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침 9시부터 밤 11시 정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침기도, 프랑스어 공부 등으로 타이트한 일상을 보냈다(53면). 그녀에게는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었다(58면). 루이 16세의 성적 무능으로(42면), 결혼하고 7년이 될 때까지 여전히 처녀였으며, 그때 비로소 아이를 갖기 시작해 아들 둘과 딸 둘을 얻었다.

나이가 좀 들어서는 박물관, 상점, 백성들의 축제에 참석한다거나, 미술전시회 방문, 오페라와 코메디 프랑세스 관람, 이탈리아 극장 방문, 무도회나 가장무도회 참석 등 여느 귀족 부인들과 다름없이 그녀의 젊은 시간을 채웠다(86면). 그녀의 남편 루이 16세는 '악의 없고 둔감한 인간'이었으며(105면), 그들 부부는 강하고 영웅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품위 있게 죽을 줄밖에 몰랐다. 운명이 다가왔으나 그들은 주인이 되어 그 운명을 지배할 줄 몰랐다(116면). 자기에게 우연히 떨어진 권력을 사용하는 대신 단순히 그것을 즐기려고만 했다(117면).

츠바이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서 본질적인 것을 희생하고, 향락을 위해 의무를, 하찮은 것을 위해서 중요한 것을, 좁은 베르사유를 위해서 프랑스를, 유희 세계를 위해서 현실을 희생해 온 마리 앙투아네트의 죄과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119면)과 썼다. 생각 없이 살아온 15년 동안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왕비라는 것은 오로지 궁중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애교 있고, 가장 옷 잘 입고, 가장 버릇이 없고 또 무엇보다도 가장 잘 노는 여자라는 찬사를 받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118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말하자면 경박하고 여리고 화려한 로코코(Rococo) 시대의 로코코 왕비였을 뿐이다.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문 법

그런데도 그녀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어 비극의 여인이 된 이유는 같은 책 9면(서문)에 씌어 있다.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문 법이고, 선동을 목적으로 어떤 인물을 그릴 때에는 막일꾼과 같은 사람에게 정의란 별로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모든 악덕, 모든 도덕적인 타락, 온갖 종류의 풍자가 각종 신문, 팸플릿, 서적을 통해서 마구 이 '오스트리아의 창부'에게로 전가되었다. 정의의 집이라는 법정에서조차도 국가의 검사가 격앙하여 '미망인 카페'(루이 16세의 처형 후 왕비를 경멸하여 부른 이름/역주)를 역사의 유명한 패륜녀 메살리나, 아그리피나, 프레데군디스와 비교했다." 라틴어로 프레데군디스, 프랑스어로 프레데공드로 불려진 프레데군드는 국왕 킬페리크 1세의 아내로, 국왕을 비롯해 여러 명을 살해한 세계 10대 악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는 여인이다. 모함을 받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왕비의 역할을 맡는 그 순간, 마리 앙투아네트는 진정한 모습을 보였다(119면). 그렇지만 너무 늦었고 그녀의 아이들도 장녀 외에는 모두 일찍 사망했다.

◇엉뚱한 비유는 독약, 조심하길

얼마 전 갑자기 한국에서 '사치와 난잡한 사생활'과는 거리가 먼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얼토당토않게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어져 '사치와 난잡한 사생활'의 주인공으로 지목됐다. 츠바이크의 말대로,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문 법이고, 선동을 목적으로 어떤 인물을 그릴 때에는 막일꾼과 같은 사람에게 정의란 별로 기대할 수 없는 법인가.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