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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연두색 번호판, 그리고 사회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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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1. 22. 17:34

이경욱 대기자 사진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4년 전 세상을 떠난 스웨덴 출신 고(故) 잉바르 캄프라드는 이케아 창업주다. 그는 전 세계 곳곳에 실용적이고 튼튼하며 규격화된 스웨덴제 목제 가구를 보급해 성공했다. 재산이 수조원이 넘는데도 출장 시 이코노미 클래스 항공기를 타고 30년 이상 같은 의자를 쓰는 등 매우 검소했다고 한다.

특히 출근 때 집에서 회사까지는 자신의 오래된 볼보 승용차를 몰고 간 뒤 회사 소유의 법인 차를 타고 업무를 보러 다녔다. 퇴근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구황제'로 불리던 캄프라드는 말년에 이케아의 복잡한 소유구조를 통해 자의든 타의든 탈세를 저질러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회사의 것과 개인의 것을 철저하게 구별하며 살기 위해 애썼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정부는 올 들어 법인 차량을 신규 등록할 때 연두색 번호판을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의무화했다. 적용대상은 취득금액(제조사 출고가 기준) 8000만원 이상 업무용 법인승용차다. 개인 사업자에게는 해당하지 않고 기존 법인차량에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연두색 번호판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대표적 공약 중 하나다.

회삿돈으로 기준 이상의 고가 차량을 살 경우 기존 자동차와 다른 번호판을 부착하도록 만든 제도다. 법인 명의로 등록돼 있는 수억원짜리 최고급 슈퍼카를 회사 임원 가족 등이 개인적으로 마구 타고 다니는 등 사적 용도로 유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여서 환영을 받았다.
노란색 번호판을 붙이는 사업용 차량처럼 고급 법인차량에도 일종의 '주홍글씨'로 낙인을 찍어 사적 이용을 최대한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그런 까닭에 요즘 길거리를 오가는 연두색 번호판 차량을 종종 보게 된다.

업무용 법인차량 제도는 경영활동 지원을 위해 도입됐을 것이리라. 업무용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는 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 승용차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회사 소유주나 경영진 가족 등이 부지기수라는 게 문제다.

법인 명의 고급차량을 집에 주차해 두고 가족이 돌아가면서 몰고 다니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윤 대통령은 거기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 누구도 못 했던 것을 과감하게 해 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연두색 번호판을 달도록 했다고 해서 이런 법인차량의 사적 이용이 근절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취득 금액이 8000만원을 밑돈다면 해당이 안 된다. 8000만원 언저리 차량은 제법 고급차다. 법 시행 의도와 달리 연두색 번호판이 오히려 '회사에서 받은 고급 차'라는 인식을 심어줘 또 다른 위화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국세청이 주행기록 등을 토대로 법인차량의 사적 이용에 제재를 가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번호판 색이 바뀐다고 해서 법인차량 사유화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자기 차와 법인 차를 엄격히 구별해 이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법인 소유 차량에 적용되는 다양한 세제 혜택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매력이 떨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연두색 번호판 같은 특이한 대책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진작부터 접대비를 폐지했다.

법인 소유 능력자라면 얼마든지 자기 돈으로 고급 차량을 사서 몰고 다닐 수 있겠다. 하지만 법인 자금으로 구입해 운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데 구태여 자기 돈으로 차량을 사는 법인 소유주가 얼마나 될까. 휘발유에 세제 혜택이 부여되는데 누가 자기 돈으로 휘발유를 넣을까.

사회 통합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괴리를 최대한 좁혀가는 게 사회통합의 핵심 아닐까. 연두색 번호판 제도를 유지하려면 차량 가액에 관계없이 모든 법인차량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법인 부동산, 회사 비용 등의 사적 이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원하는 투명한 사회, 공평과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가 앞당겨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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