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김이석 칼럼] 시장경제는 ‘남의 뼈를 깎아서’ 생존할 수 없는 곳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files.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107010004276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1. 07. 18:30

김이석 논설실장
논설심의실장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런 무산 위기는 태영그룹이 당초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태영그룹이 워크아웃 개시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4가지 자구안 가운데 첫 번째인 태영 인더스트리 매각자금 890억원의 태영건설 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매각했지만 이를 당초 약속대로 태영건설이 아니라 TY홀딩스에 지원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태영그룹 측은 "워크아웃으로 즉시 채무를 갚아야 하는 태영건설을 대신해 TY홀딩스가 개인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직접 상환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이는 채권자의 일원인 산업은행 관련자의 말처럼 "어머니가 자산을 팔아 아들의 채무를 갚겠다고 약속해 놓고 내가 있어야 아들도 산다며 자기 빚부터 갚은 셈"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채권단과의 신뢰가 깨지면 워크아웃이 무산되고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태영그룹의 자구안 불이행에 대해 채권단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이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산업은행의 강석훈 회장은 태영 측과의 신뢰가 상실됐다고 강하게 질타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태영건설이 자기 뼈가 아닌 남의 뼈를 깎고 있다"면서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워크아웃으로 원리금 상환을 유예하면 이것이 일종의 금융지원임을 강조하고 경영의 책임은 경영자가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태영건설이 법정관리로 들어가면, 태영건설과 관련된 금융채권과 상거래채권이 모두 동결된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당연히 주주들의 보유 주식의 비율대로 책임을 지게 되고 채권자들도 채권액 전부를 돌려받기 어렵게 된다. 태영건설의 협력업체들과 태영건설이 지은 아파트를 분양한 사람들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서는 이 문제는 태영건설 하나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정부로서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으로 협력업체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줄어들기를 바라겠지만, 자칫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허무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아울러 정부와 금융당국으로서는 혹시 태영건설 워크아웃 무산이 건설업계 전반과 금융업계 전반에 혹시 '도미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금융당국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놓고 준비하고 있고" "(법정관리 시에도) 시장에 혼란이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실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장담하고 있으니, 일단은 안심이다.

시장경제에서 경제주체들이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황금률 가운데 하나는 언제든 부도 상태를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도를 벗어나려면, 당연히 어느 날짜를 잡더라도 자신이 갚아야 할 부채보다 유동성이 더 많도록 확보해 두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특별히 시장경제의 '황금률'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아주 기초적이고도 잘 지켜나가야 할 규칙이라는 의미와 함께 '빚' 무서운 줄 알라는 경고의 뜻이 들어 있다.

물론 변제해야 할 빚이 순간적으로 유동성보다 많더라도 순간적인 자금경색일 뿐 곧 들어올 돈이 있다는 게 거의 확실하다면, 그리고 채권자들이 그 회사가 부도가 나는 것보다는 채무를 유예해 주거나 빚을 일부 줄여주는 것이 채권자들 자신에게도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얼마든지 채무는 변제기일이 연기되거나 조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이미 채권은행과 태영그룹뿐만 아니라 금융당국도 지금 건설업이 그런 상황보다 훨씬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문제가 쉽지 않다.

아무튼 태영건설 문제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시장경제의 황금률을 지키지 못하면 앞으로 건설업계에서 유사한 사태에 더욱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시장경제는 '남의 뼈를 깎으려고 해서는' 더 빨리 망하는 곳임을 확실하게 인식시키기를 바란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