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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이후 미얀마에선 매일 민간인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발생부터 지난 8일까지 1040일 동안 군부에 의해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만 4244명이다. 군부 측 피해와 집계되지 못한 죽음까지 합한다면 사망자 수는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수만 명이 사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사망자수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영·미 당국은 양측에서 각각 7만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한다. UN은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었다고 밝혔다. 635일 동안 매일 민간인 16명이 사망한 셈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이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는 더욱 참혹하다. 정확한 민간인 사망자 규모 확인이 어렵지만 보수적인 집계로도 48일 간의 공습에서 발생한 여성·어린이 사망자만 1만명으로 추정된다.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전의 여성·어린이 사망자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팔레스타인 보건부가 9일까지 집계한 가자지구 사망자는 1만7700명을 넘었다. 이 외에도 수천 명이 건물 잔해에 묻혀 숨지거나 실종된 상태다.
호주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IEP)가 올해 6월 발표한 세계 평화 지수 보고서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전쟁·내전 등 분쟁으로 23만8000명이 사망했다며 "21세기 들어 가장 많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폭력의 시대가 열렸단 경종이지만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자발리아 난민촌이 불타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즉각적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선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상 네 번째, 냉전 이후론 처음으로 유엔 사무총장이 안보리의 관심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즉각휴전 결의안 반대를 묻는 안보리 의장에 번쩍 치켜든 로버트 우드 유엔 주재 미국 부대사의 손은 흡사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공모와 같이 보였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죽음은 막을 수 있다. 휴전 없이 어떻게 죽음과 비극을, 전 세계로 확대될 분노와 폭력을 막을까. 죽음은 피하지 못하더라도 불필요한 죽음을 막아보려는 것이 최소한의 인류애고 인간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