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4층 전관을 모두 사용하는 대규모 전시인 이번 개인전에 작가는 대형 걸개그림을 포함해 모두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먼저 박용일의 이전 보따리들에 비해 이번 전시에서 마주할 수 있는 보따리들은 장르와 질료 그리고 형태, 패턴 등 회화와 구상의 껍질을 탈각시킨 채 확장과 해체를 오가며 자유로운 감각의 세계로 관람자를 이끈다.
박용일 작가에 따르면 보따리는 속과 겉 표면 그리고 보따리의 밖의 경계까지도 포용하며 우리 앞에 있다. 보따리 안에 든 것에 따라 보따리는 형태와 크기를 달리한다. 또한 어떤 종류와 어떤 패턴의 천으로 싸는 지에 따라 겉표면이 달라지며 보따리에 싼 것과 싸이지 않은 것의 존재와 세계를 구분 지으며 다양하게 변주된다. 보따리는 이렇게 한 곳에 정주하며 놓여 있으며 안정의 오브제로 해석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이주의 삶으로도 표현되기에 이중적이다. 이번 전시의 평면 보따리들은 이러한 두 세계에 걸친 이중적이고 변주적인 삶을 표현하며 한층 자유롭게 해체적으로 작업을 가져갔다고 말한다.
박용일 작가의 여러 작품 중 스테인리스 스트링으로 엮은 보따리는 평면을 뚫고 나왔으되 속이 비었다. 보따리에 싸인 그 무엇을 텅빈 공허함으로 채운 듯하다. 정주하지 않는 삶이기에 보따리가 필요하지만 무언가를 보따리에 채운들 우리 삶이 영원한 안주도 완전도 이룰 수 없음과 마찬가지리라.
방충망을 보따리로 만들고 이어 붙여 만든 설치작품 역시 장르의 확장으로 보따리와 이주의 삶이 가진 태생적 유연함을 은유한 듯 보인다. 이번 전시는 인생 보따리가 가지는 이중적이면서도 다양한 삶과 세계를 반영하며 박용일의 작가 인생 ‘He-Story 일탈’을 밀도 있게 보여준 전시라 할 수 있다.
한편, 박용일 전시는 오는 12월 18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소재 ‘갤러리 H’에서 휴관 없이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