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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재계에선 부산엑스포 민간유치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1년 반 동안, 가장 열정적으로 엑스포 유치 활동을 벌인 대표 기업으로 현대차그룹을 꼽는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마지막까지 프랑스 파리에 남아 투표 결과를 끝까지 지켜보는 장면이 방송에 여러번 포착됐다. 재계에선 정 회장이 출장 기간 동안 임직원들에게 국가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독려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만큼 폭 넓게 사람을 만나고 머리를 맞댔다는 얘기다.
지난해 4월 정의선 회장은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제정세가 불안정하고 변화가 많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 언론 및 정관계 등 외부와의 소통을 강화해 미래 예측력을 키우려 한다"고 전했다. 팬데믹이 불러온 차량 반도체 쇼티지로 골머리를 앓던 정 회장의 솔직한 멘트다. 이후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로 보조금 악재가 발생했을 때에도 만사 제쳐놓고 미국으로 달려갔다. 재계에서 가장 발빠른 대응이었다. 그렇게 현대차는 급변하는 패러다임의 변화와 국제 정세 흐름을 읽고 싶어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글로벌 각국 정상과 만나야 했던 이번 부산엑스포 유치전이, 현대차 갈증을 해소하는 계기이자 열쇠가 됐을 거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유한 글로벌 채널 및 플랫폼을 총동원해 한국과 부산의 글로벌 위상과 개최역량, 차별화된 경쟁력을 알렸다. BIE 회원국 개별 교섭활동과 글로벌 디지털 캠페인, 친환경 모빌리티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비즈니스와 CSR 등 다양한 분야의 상호 협력이 맺어졌다. 각 국에서 필요로 하는 노하우와 사업 기반이 무엇인지, 현대차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를 묻고 답하는 과정 역시 유치 활동의 일환이었다.
일부 저개발 국가와 만났을 땐 현대차가 보유한 첨단기술과 미래사업을 상세히 소개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룹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다. 현대차의 현지 진출 시점과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 일회성 접촉에 그치지 않고 해당 국가와 CSR·자동차부품·광물자원·EV 충전 인프라·철도·소형모듈원전(SMR)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유대관계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정 회장이 투표를 앞두고 가진 BIE 대표단 초청 만찬에서 "결과와 관계없이 한국은 각국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유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됐다. 새로운 친구들을 위해"라고 한 건배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현대차그룹은 엑스포 유치활동 과정에서 약속한대로 아프리카 현지에 사회공헌 '그린 라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아프리카는 현대차에 있어 언젠가 반드시 공략해야 할 대상이다. 이번 협력으로 진정성이 더해지며 우호적 관계가 돈독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사업 네트워크가 크지 않은 국가들에서도 유치활동을 계기로 현대차의 첨단 기술을 소개하며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세웠다. 전동화가 본격화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EV 충전인프라 구축 협력을 제안하는 등 향후 시장 진입 기회도 얻었다. 자동차 부품과 광물 등 공급망 측면에서도 수급 채널을 다변화할 수 있는 접점도 잡았다.
이번 기회에 그룹은 현대차·기아 생산공장이 있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인근 국가들과도 부품 수급 다변화를 위한 안정적인 부품 공급체계 구축도 기대하고 있다.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채굴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국가들과는 그룹 차원의 협력 채널을 구성하고, 향후 사업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다수 국가를 대상으로 고속철과 경전철 등의 철도사업, 발전사업 신규 참여를 타진하는 등 그룹 차원의 신규 비즈니스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부산엑스포 유치과정에서 추진한 다양한 분야에 걸친 협력 사업은 엑스포 유치 결과와 상관없이 지속 추진하는 것은 물론 상호 협력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상대국과 진성성 있는 네트워킹 구축과 현대차그룹의 미래 사업 경쟁력 향상이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