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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칼럼] 의료개혁, 시스템적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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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10. 26. 19:01

양준모 연세대 교수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윤석열 정부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의대 정원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아직 의료계의 반발은 가시화하고 있지 않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발표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견이 없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개혁과 달리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의 증원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이 감당해야 할 비용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의사 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면서 증원에 힘을 실어 준다. 어떤 지방자치단체장은 자신의 지역에 의대 설립을 주장하고, 입시학원들이 움직인다는 보도도 있다.

그동안 경제 논리를 부정했던 사람들이 경제 논리를 이야기하면서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의료비용이 줄어든다고 잘못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의사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의료시스템을 평가하는 종합적인 시각이 부족하고, 제기된 구체적인 쟁점에 대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논란만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자유로운 경쟁에 의해 운영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정부가 모든 의료 행동을 통제하고 가격을 정해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많은 문제는 사람들의 유인 체제(incentive mechanism)를 무시하고 특정한 시각에서 결정된 의료 행위 관리와 가격 통제로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박리다매형 시스템이다. 개별 의료 행위에 대한 보상 기준이 임대료와 설비비용 등을 충분하게 반영하여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의 환자를 치료해야 병원 운영이 가능한 체제다.

이러한 체제는 인구가 집중된 지역에서는 낮은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인구가 집중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의료서비스 제공 자체가 어려워진다. 지역의 의대 정원을 늘려도 여기서 육성된 의사들은 지역에서 의료행위를 하기 어렵다. 일정 규모 이상의 환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료시스템에서 인구집중 지역에서는 좋은 의사와 좋은 시설을 갖추고 더 많은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의료비의 차이도 크지 않다. 환자들은 당연하게 소위 빅5 병원에 몰린다. 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이런 병원의 의료진들은 누적된 경험도 많다. 더욱이 입소문이 신념으로 굳어져 있어, 환자들은 각종 객관적 평가에는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정부는 지역의 거점 국립대 병원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해왔다. 시설 면에서나 의사의 능력 면에서나 차이는 없다. 환자촌이 생기고 새벽에 KTX 열차 타고 빅5 병원에 모이는 이유는 시스템적 한계다. 상급병원 수가를 올려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환자들은 빅5 병원에 가기 위해 수가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지역의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쟁 없는 시스템에 안주하지 않고 스타 의료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의사 수와 의료수가 등 공급의 양적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박리다매형 의료시스템은 인구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저출산으로 소아과와 산부인과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환자가 줄어 일부 의사들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암울한 미래가 예측되는 분야에서 훈련받고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없다. 의사 수를 늘린다고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 수를 늘리고 의료수가를 보상해 주어도 인구가 밀집되지 않은 지역에서의 소아과와 산부인과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법률위험이 큰 전공들도 기피 대상이다. 과거에는 의료행위의 과실 여부는 직접적 인과관계 입증을 전제로 판단했다. 현재 환자들의 법적 권리 보장 요구가 강해지고, 비전문가인 환자가 입증하게 하기보다는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전환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이에 따라 의사들은 명백한 과실이 없어도 법적 분쟁에 시달리게 됐다. 이러한 문제들은 현재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의사 부족 여부다.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 당 2.6명이고, 인구 10만명당 의대 졸업자 수는 7.3명이다. 미국은 각각 2.7명과 8.5명이며 OECD 평균은 3.7명과 14.0명이다. 일반적으로 각국은 서로 다른 건강보험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의사의 수만을 비교하여 의료비용의 많고 적음을 판단할 수 없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감당하는 의료수요는 OECD 평균 대비 높다. 2021년 기준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5.7회이고 평균 재원일수는 18.5일이다. OECD 평균은 각각 5.9회와 8.1일이다. 경상의료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3%로 OECD 평균 9.7%보다 낮다. 적은 의사 수로 많은 의료수요를 적은 의료비용으로 감당해 냈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성과도 OECD 평균보다 좋다. 2021년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독일 80.8년, 프랑스 82.4년, 그리고 OECD 평균 80.3년보다 길다. 우리나라 회피가능사망률도 10만 명당 142명으로 OECD 평균 239.1명보다 낮다. 의사의 수가 부족하여 의료시스템이 붕괴했다면 이런 성과는 기대하지 못한다.

만약 의사의 수를 늘린다면, 더 많은 의사들을 수용하는 시설과 각종 부대비용으로 인해 관련 비용이 증가하고 비용에 따라 결정되는 건강보험의 보상체제로 국민 부담은 증가한다. 의사의 수만 늘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역의료 및 특수의료 문제의 원인이 의사 수의 부족 때문인지 환자 이송 체계와 건강보험제도 때문인지도 규명돼야 한다. 의료시스템 개선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정부는 혜택 증가와 이에 따른 비용 증가를 균형 있게 검토하여 의료시스템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시스템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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