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 새로운 과자의 노력과 업계의 선전 기대
최성록 기자
그 댄스 그룹은 90년대 청소년 문화를 대변한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1집은 랩, 2집은 시조와 국악을 활용했으며, 3집에는 통일과 교육이라는 담론을, 4집은 가출한 청소년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들은 명실상부한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새 음반을 발매할 때마다 TV·신문·잡지·PC통신에는 그들의 얘기로 도배가 됐다.
영원할 줄 알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부터 1996년 초반까지 불꽃처럼 타오르고 해체됐다. 이후 서태지 혼자 솔로활동을 했지만 당대의 문화 아이콘이 되지는 못했다.
# "아저씨는 어떻게 생겼나요. 저는 HOT(에이치오티)의 토니 오빠가 이상형이에요."
90년대 후반 군 복무 중, 가요책 제일 뒷장에 있는 펜팔란에 신청한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경남의 한 여고생에게 온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서태지에 이어 세기말에 등장한 에이치오티의 인기도 어마어마했다. 가요 프로그램에선 그들의 노래가 1위를 달성했다. 응원하는 가수는 그들에 눌려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인터넷 게시판과 포털사이트 팬클럽에서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중계됐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진행되는 이들의 콘서트는 꽉꽉 채워졌다. 이들의 인기 역시 오래도록 지속될 줄 알았다.
이후 동방신기가 바통을 이어 받았고 원더걸스도 데뷔했다. 소녀시대를 거쳐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미국 본토까지 진출했다. 까마득한 후배 방탄소년단(BTS)은 빌보드 1위라는 대기록을 썼다.
그런데...
영원한 승자는 없다.
80년대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해태 타이거즈도 마찬가지였고, 90년대 마이클 조단이 이끄는 미국 NBA시카고 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마제국, 몽골제국, 대영제국 모두 어떠한가.
세상은 일등을 가만 두지 않는다.
# 육아를 하면서 놀랄 때가 있다. 바로 아이들이 과자를 먹을 때다. 길면 40년, 짧으면 20년 전에 먹던 새우깡을, 초코파이를, 빼빼로를, 죠리퐁을 우리 아이들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서태지부터 BTS까지 수많은 가수들이 피고 졌지만 과자·스낵은 여전하다. 어제의 1등만이 오늘의 1등이 돼서 살아남는다.
양날의 검이다. 잘 키운 과자 하나가 회사를 살린다는 얘기를 듣기도, 제품 하나 개발하고 평생 놀고먹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물론 업계 역시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수십, 수백억원을 들여 새로운 맛을 개발하는데 집중하지만 결국 5년 이상 생존하는 건 5%도 되지 않는다.
100개 중 소비자한테 선택받은 단 5개 미만의 과자만 살아남는 무지막지한 적자생존이 진행 중인 것이다.
새로운 것을 내놓으려고 해도 실패를 거듭하니 기존 제품에 초코맛, 딸기맛 등을 추가하는 파생형 제품만 나온다.
그래서 단언할 수 있다. 과자, 라면 등 대한민국의 식품업계야 말로 '보수'의 성지다.
이 같은 엄청난 생명력에 찬사를 보내야 할까? 아니면 직무유기로 보고 제작사들에게 채찍을 들어야 할까?
# 최근 먹태깡, 노가리칩 등의 선전은 신기하고 짜릿할 정도다. 이 제품들은 품귀현상은 물론, 오랜만에 등장한 '어른들의 과자'라는 컨셉으로 판매량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 과자가 성공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허니버터칩이 그랬듯, 최소 롱런할 수 있는 기반은 갖춘 셈이다.
엄청난 경쟁과 까다로운 소비자의 입맛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들이 부상하면서 또 다른 강자는 내려오거나 사라질 것이다.
세상의 영원한 것은 없다. 아니 없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붙어있는 처절한 끈질김...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어떻게든 태어나 생존하려는 과자들과 업체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