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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칼럼] 한국경제인협회와 자유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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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08. 27. 18:03

김영용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사건을 계기로 정경유착의 오명을 쓰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탈퇴했던 삼성, 현대차, SK, LG 그룹이 그 이름표를 바꿔 단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복귀했다. 한경협은 정경유착을 일소하고 미래지향적 싱크탱크형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를 위한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는 곧 정경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경협의 그런 다짐과 구상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정경유착의 근본 원인은 정부가 가진 자원배분의 강제력이다. 그래서 정부는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사유재산의 재배치를 강제할 수 있는 각종 규제(정책 포함)를 발효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규제는 정부와 그런 규제에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 간에 거래된다. 각종 인허가, 면허제, 보조금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그런 규제를 발효시켜 기업으로부터 정치 활동에 필요한 자원을 얻고, 기업은 정부로 하여금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를 만들도록 정부를 포획하여 이익을 얻는다. 규제가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챙기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부와 특정 규제에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 간에 발생하는 현상이 이른바 정경유착이다. 그래서 공익을 가장한 규제가 있는 곳에는 부정부패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는 정부의 강제력이 최소화되지 않는 한, 정경유착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한경협이 설치하겠다는 윤리위원회가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을 바라지만, 그것은 그저 밖으로 내건 포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기능을 수행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러하듯이, 권력을 쥐면 행사하고 싶어 하고, 이들이 행사하는 막강한 권력에 대항하여 살아남을 개인이나 집단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 보호를 위해 설립되지만, 설립과 동시에 이를 해칠 수 있는 가장 위협적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위협적 정부의 규모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논지이다. 즉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 보호를 위한 국방과 치안,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문란케 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교화 등의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 분야에서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이 정부를 포획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를 얻어내는 정경유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작은 정부의 실현과 짝을 이루는 논리가 바로 자유시장경제 창달이다. 정부가 가진 자원배분의 강제력이 최소화되면 시장에 남는 것은 경쟁뿐이다. 경쟁은 나의 거래 상대방에게 다른 참여자들보다 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이기려는 대항적 행위이다. 그리고 경쟁의 결과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을 토대로 이뤄지는 물질적·정신적 문명의 발전이며,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의 복지 향상이다.

중요한 사실은 작은 정부의 실현과 자유시장경제의 창달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부단한 연구와 교육, 그리고 홍보에 대한 자원 투입이 없이는 이룩될 수 없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전경련은 1981년에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과 1997년에 자유기업센터를 설립하여 자유시장경제 창달에 힘써 왔다. 그러나 한경연은 최근에 한경협에 흡수·통합되었고, 현재의 자유기업원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방치되면서, 자유시장경제의 창달 노력은 길을 잃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좌우 이념 갈등이 심화되어 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물적 토대가 쌓이면 특정 목적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개인의 실질적 자유가 보장돼야 하고 인간은 모두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는 의식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의식은 부를 창출하는 주체인 기업에 대한 다양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기업 활동과 부(富)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정권이어서 그런 공격에 대항해야 할 절실함이 덜할지 모르지만, 비우호적 정권이 들어선다면 그 절실함은 아주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인력은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덕분에 잘 먹고 잘 사는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고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인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이 자유시장경제에 우호적인 지금이 이에 대해 연구·교육·홍보하는 기관을 튼튼하게 보강하고 육성해야 하는 좋은 시기이다. 그런데 이번 한경협의 출발을 계기로 그런 일을 하는 한경연은 도리어 해산됐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사상과 철학의 중요성을 깊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진 탓이리라. 이번 한경연의 해산은 그런 몰인식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한 사회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기둥을 형성하는 사상과 철학이라는 사실은 더욱 강조돼야 한다.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사상과 철학이 빈곤한 사회는 초토화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본원적 인간성과 그들이 가진 다양한 가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치하에서 1억 5000만명으로 추산되는 아사자(餓死者)와 오늘의 북한 실정은 이러한 사실을 논리와 실증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불확실성하에서 이윤 기회를 발견하고 만드는 기업가들의 모임인 한경협이 수준 높은 싱크탱크형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그들의 활동 무대인 시장의 형성 및 유지와 시장에 참여하는 인간들의 행동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이해가 자유시장경제의 창달을 위한 행동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김영용(전남대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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