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특별기고] 보수주의(conservatism)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files.asiatoday.co.kr/kn/view.php?key=20230809001548005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3. 08. 09. 17:00

강성학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강성학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에는 근래에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왜 보수당이라는 명칭을 가진 정당은 없을까? 보수주의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보수주의적 기질은 어느 곳에서나 인간사회의 인정된 특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들과 정치적 운동이 자신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발전하였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비판적 반응에 의해 가장 완전하게 표현된 정치적 보수주의는 인간사회란 세속적이고, 평등주의적이고, 그리고 자치정부의 길로 안내될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신념에 대한 반대로 서양에서 발전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관적 견해에 의해서, 즉 국가나 공동체가 개인주의와 갈등을 일으킬 때 전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인간행위의 합리적 모델에 토대를 둔 정치제도의 거부에 의해 특징되었다. 이런 핵심적 원칙들은 최선의 정부형태나 최선의 사회질서에 관련하여 일단의 실질적 아이디어들을 구성하지 않았다. 그것은 가장 다양한 현상(status quo)의 가장 다양한 보수적 옹호들이 적합한 틀을 정의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보수주의는 기이하게도 영국의 관습법(the common law)의 전통을 물려받은 곳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판적이었지만 그보다 12년 앞선 미국의 독립혁명을 지지했던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의 고전적인 보수주의 정치철학은 기이하게도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자유주의적 독립 혁명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보수주의는 정치철학과 정치방법, 혹은 정치의 목적과 수단에 관련된다. 미국에서 독립전쟁을 치른 13개 아메리카의 개별국가들이 하나의 연방국가를 수립할 때 그것을 정당화하고 옹호했던 <연방주의자 논문집>(the Federalist Papers)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적 기념비이다. 이 연방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최고의 보수주의 이론가였고 실천가였다. 그는 연방주의자 논문 제1편에서 막 작성된 헌법의 많은 반대자들의 이기적이고 야심적인 견해에 앞서 보다 더 넓은 공공선을 우선하도록 인민들에게 호소했다. 그는 연방주의자 논문 23번에서 강력한 중앙정부의 이점을 옹호하고 상비군의 창설을 촉구했다. 열렬한 민족주의자였고 후에 초대 재무부 장관이 된 해밀턴은 활기찬(energetic) 정부의 수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독립 후 국가의 혼란한 재정에 질서를 세우는 임무를 워싱턴 대통령으로부터 부여받은 해밀턴은 강력한 행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또 부유하고 강력한 사람들의 지지로 안정된 강력한 정부와 함께 산업발전에 의해서 촉진되는 국가를 상정했다.

자신들의 독립성과 이익을 열심히 수호하는 당시 엉성하게 연계된 13개 주들의 농업국가에서 해밀턴의 정책은 논란의 피뢰침이었다. 그는 특히 연방정부보다 독자적 주정부 중심의 정치와 목가적 농업국가를 지향하는 저명한 혁명가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그는 연방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려는 소위 작은 정부의 주창자였다. 그러나 해밀턴은 강력한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국가은행을 설립하고 제조업을 장려했다. 그는 영국과 같이 번성하는 산업 및 상업국가를 상정했다. 그는 부국강병의 미국을 원했다. 그리하여 이 두 사람의 분열과 대립의 최종결과는 해밀턴의 연방주의자들과 제퍼슨의 공화주의자 사이에 국가적 분열이었으며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정당제도라고 부르는 것의 출현을 가져왔다. 해밀턴의 사망으로 연방주의자들은 사실상 사라지고 홀로 남은 제퍼슨은 민주-공화당(후에 민주당)의 창시자로서 제3대 대통령이 되었고 그 후 민주당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으로 빈번하게 집권하였으며 지금까지도 민주당은 존속되고 있다. 

그러나 알렉산더 해밀턴 사후 제6대 존 퀸시 애담스(John Quincy Adams) 대통령, 공화당의 창설자인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과 공화당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같은 보수주의 정책의 위대한 실천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민주당과 공화당은 미국의 외교정책을 중심으로 보다 선명하게 자유주의(혹은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로 갈리게 되었다. 민주당의 제28대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이 혼신을 다해 추진했던 국제주의적 미국의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 가입문제로 공화당과 대립했고 국제연맹의 집단안보규약이 미국의 헌법에 우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제1차 대전의 참전에 대한 반성이 지배하게 되면서 미국에서는 '아메리카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1941년 진주만 기습 때까지 압도적인 여론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의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 수행한 제2차 대전 후에는 미국 주도의 유엔(the United Nations)이 미국 외교정책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1929년 경제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공화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은 진보주의적 복지정책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 복지정책은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을 거치면서 제36대 린든 존슨(Lindon Johnson)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 프로젝트의 완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한 세대에 걸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진보주의적 복지정책의 심화는 영국에선 소위 '영국병'을 그리고 미국에선 심각한 경제적 침체를 가져오고 말았다. 경제침체에 대한 양국의 국민적 반발은 오랫동안 동면상태를 지속해 온 보수주의를 일깨웠다.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 표방하는 정치가가 마침내 집권하여 혁명적 정책의 변화를 추진했다. 이런 신보수주의는 대표적인 철학자들을 갖고 있었다. 영국에선 마이클 오크숏(Michael Oakeshott)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가 있고 미국에는 리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있다. 그리고 그런 신보수주의 철학의 실천가로는 1980년대 영국의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수상과 미국의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들이 내세운 것은 오랫동안 잃어버린 개인의 '자유'였다. 정부의 강력한 역할을 표방했던 고전적 보수주의와는 아주 달리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과도한 국가개입으로부터 개인의 해방을 의미하는 자유가 신보수주의의 핵심적 가치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신보수주의의 무엇보다도 창의적 자유를 의미했다. 특히 기업인들에게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자유로운 창의적 기업활동을 위해 이제 벗어 던져야 할 불필요하고 무겁기만 한 낡은 갑옷 같은 것이었다. 보수주의는 그동안 끝도 없는 맹목적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시행되어 온 온갖 사회주의적이고 심지어 공산주의적인 수많은 정부의 규제정책으로부터 해방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그동안 압박했던 무분별한 복지정책이라는 복장을 단숨에 벗어 던지고 이제 자유라는 복장으로 갈아입음으로써 오랫동안 잃어버린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버크 같은 고전적 철학자나 해밀턴 같은 이론가는 없었다. 그러나 해밀턴 같은 부국강병의 고전적 보수주의의 실천가는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그런 범주에 속한다. 그렇다면 신보수주의의 철학자나 이론가는 있는가? 역시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이 신보수주의의 자유를 앞세우지만 그가 신보수주의 철학자나 이론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이 적어도 신보수주의 신념의 훌륭한 실천가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는 대통령 재임 중 적어도 한국의 '보수당'을 창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는 한국에서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과 유사한 일생일대의 역사적 모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강성학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본란의 기고는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