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횡령죄 인정…상고심은 "범죄 준비·실행 단계 위탁관계"
"형사상 보호 가치 있는 위탁관계 아냐"…민사상 청구는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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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51)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A씨는 2013년 1월께 피해자 2명과 의료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해 조합 명의로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나눠 갖기로 약정했으나, 병원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사업추진은 중단됐다.
하지만 A씨는 이듬해인 2014년 2월께 이들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받아 보관하던 2억5000만원 중 2억3000만원을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했고, 검찰은 A씨가 피해자들의 투자금을 반환하지 않고 개인용도로 사용한 행위에 대해 횡령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의 횡령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그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씨의 형량을 징역 6개월로 낮췄다. 앞서 A씨가 피해자 중 한 명으로부터 받은 돈 2억2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단을 받은 것이 면소 대상이라고 본 것이다. 면소는 형사소송에서 공소권이 없어져 기소를 면하는 일로 △해당 사건에 관해 이미 확정판결이 났을 때 △사면이 있을 때 △공소시효가 지났을 때 등에 이뤄진다.
다만 재판부는 A씨와 피해자들 모두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동업 약정 자체가 불법 행위라 무효라고 지적하면서도, A씨가 피해자들의 투자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어 이를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은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이 유죄로 인정한 횡령죄까지 무죄라고 봤다.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재물을 보관하는 자와 소유하는 자 사이에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임에 의한 위탁관계가 존재해야 하고, 이 관계가 형법상 보호 가치가 있는지는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의 판례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범죄의 준비·실행을 통해 형성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횡령죄 성립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본 것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금원의 교부가 의료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민사상 반환 청구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사상 반환 청구권이 허용된다고 해서 무조건 형사상 보호 가치가 있는 위탁관계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금원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는 자의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이라는 범죄의 실현을 위해 교부됐으므로, A씨와 피해자 사이에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신임에 의한 위탁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