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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최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헤어질 결심’을 ‘순수한 영화’라고 했다. 영화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 매 작품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로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그는 ‘헤어질 결심’을 통해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 오는 29일 개봉 예정이다.
‘헤어질 결심’은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장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송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얘기다. 2016년 ‘아가씨’ 이후 6년만에 선보이는 박 감독의 장편 영화다. 지난달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당시 탕웨이가 여우주연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단다. “탕웨이가 개인 일정 때문에 한국으로 먼저 돌아가야 했는데 그래서 탕웨이가 여우주연상을 받으면 어떡하지하며 걱정을 했죠. 혹시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면 문자 메시지로 수상소감을 보내달라고 탕웨이에게 부탁했어요. 탕웨이가 수상하면 박해일이 나가서 상을 대신 수상한 후 메시지를 대신 읽고 만약 탕웨이가 수상하고도 메시지를 보내 오지 않으면 내가 대신 받기로 했었죠. 그런데 결과는 이렇게 됐어요.”
이영애, 김옥빈, 김민희, 김태리 등 박 감독과 함께 작업한 여배우들은 작품 속에서 기존에 보지 못했던 매력을 보여줬다.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도 그랬다. 깊은 감정 연기나 귀여운 모습 등 평소 보지 못했던 탕웨이의 다양한 매력이 영화 속에 오롯이 담겼다. 이런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박 감독이 그만큼 배우를 세심하게 관찰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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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웨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장난기가 있었어요.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고. ‘나는 이렇게 해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소신이 또렷한 사람이었어요. 이런 모습을 캐릭터에 담아냈죠.”
영화에선 해준과 서래가 나눈 독특한 그들만의 문장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마침내’라는 말이 그렇다. 두 사람의 서사를 쌓는데 큰 역할을 하는 이 단어를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고 박 감독은 말했다.
“서래는 스마트 기기의 앱을 활용하는 인물이죠. 사극 드라마와 책을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한 탓에 의미는 정확한데 요즘 사람에겐 낯설게 들리죠. 말투나 장소, 공간에서는 고풍스러운 구식의 느낌을 만들어 대비시키려고 했어요. 처음에 서래의 한국말을 들으면 웃음이 나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표현이 요즘 내가 쓰는 말보다 더 정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한국말이지만 생경하고 들리고, 그 단어가 가진 뜻을 더 음미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마침내’ 같은 단어는 흔한 단어지만 서래를 통해 들으니 생각해 볼수록 운명적인, 올 것이 온 것 같은 거창한 생각이 들게 하는 효과를 만들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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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한 느낌을 구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걸 구상하거나 배우에게 특별한 표정을 주문하지 않았어요. 에로틱한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신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해요. 육체적인 터치보다 사랑과 관심, 이런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적인 즐거움까지 유발하는지를 알려주는 증거 같죠. 저는 특별히 관능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쓰지는 않았죠.”
영화적 기교나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 구식으로 보일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현대에는 이런 영화가 오히려 새롭게 보이겠다는 기대도 있었단다. 이런 박 감독의 의도는 전 세계 영화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의 걱정은 기대감으로 변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저는 좀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다른 메시지나 감독의 주장 같은 걸 포함시키지 않은, 영화적으로 화려한 볼거리나 기교가 없이 최소의 요소로 영화를 찍고 간결하게 구사해서 깊은 감흥을 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죠. 그게 받아들여질지 아닌지는 처음에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구식으로 보일 수 있겠다’라는 걱정도 있었고 오히려 현대에는 이런 영화가 더 새로워 보이겠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왜 ‘헤어질 결심’일까. “독립영화 제목 같다는 이들도 있어요. 트리트먼트를 쓰는 단계에서 ‘이 때 그럼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한 건가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헤어질 결심’이 제목 같다는 생각을 했죠. 무엇인가 결심을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잖아요. 이러니 결심은 실패와 곧장 연결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을 들으면 끝내 헤어지지 못하거나 아니면 정말 고통스럽게 헤어지겠구나 생각하죠.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서 바람직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랑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헤어질 결심까지 했을까라는 생각도 하겠죠.”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이후 국내외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박 감독은 이러한 호평이 기분은 좋지만 “영화 보는 일이 직업이 아닌, 안 봐도 되는데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그래서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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