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獨 나남철씨 투표 관전기] 유능 후보에 대한 열기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files.asiatoday.co.kr/kn/view.php?key=20220303010001747

글자크기

닫기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승인 : 2022. 03. 03. 12:49

나남철 에센 교민 본지 투고
오는 9일 치러지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접전이 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달 23일부터 5일 동안 진행된 재외 국민 투표도 열기를 더했습니다. 유럽의 대표 국가 독일이라고 다를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이 분위기를 독일 에센에 사는 언론인 교민인 나남철(여) 씨가 자세하게 알려왔습니다. 이에 이 글이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판단 하에 원문 그대로를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투표
독일 본에 마련된 재외 국민 투표소 광경. 오른쪽이 나남철 씨./제공=독일 교민 나남철.
지난해 가을부터 20대 대통령 선거 재외 유권자들을 위한 독일 공관의 홍보가 서서히 시작됐다. 안내문도 날아들었다. 독일 시민권자인 나에게는 먼 나라 얘기처럼 다소 생소한 대선 안내문이었다. 그러나 평소 소신껏 일하는 나의 지지 후보가 언제인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던 터라 드디어 그 때가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주위를 살펴봤다. 그러나 주위의 지인들은 거의 시민권자들이라 자신들이 마음에 품었던 후보를 열렬히 지지할 뿐 실제적인 한 표를 행사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 뿐이었다.

투표권이 없다고 그대로 포기할 수만은 없었다. 주위에 한국 여권 소지자를 수소문했다. 그리고는 그들을 투표 당일 날 투표장이 있는 본 영사관에 차량으로 모셔다드리는 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제로 서류 작성에 서툰 유권자들에게는 영사관에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도움도 줬다. 등록 마감을 마친 후에는 투표할 수 있는 날짜를 조정해 명단을 작성했다.

드디어 2월 23일 재외국민 투표가 시작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나는 전날 하필이면 투표 하루 전에 마감해야 하는 기사 작성을 위해 밤샘을 하고 말았다. 더구나 당일에는 투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예약된 일도 두 개나 있었다. 그래서 이날 만큼은 투표 일정을 다른 날로 조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유권자가 근무 때문에 23일에만 투표할 수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새벽부터 예약된 두 가지 일을 서둘러 마쳤다. 이어 오후에 유권자 세 분을 모시고 영사관이 있는 본으로 출발하게 됐다.
집에서 본 영사관까지는 왕복 250킬로미터나 됐다. 중간에 정체에 걸리지 않는다면 다행히 투표를 하고 올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늘 정체되는 구간을 감안하면 아슬아슬하게 투표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엄습했다. 어쨌거나 나는 70년 만에 처음 투표를 해본다는 두 분과 한국에서 이미 투표를 해봤다는 한 분을 모시고 길을 떠났다. 도중에서는 그동안 토론회에서 봐온 후보들을 나름 평가하면서 다행히 본 영사관에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일행들은 체온을 재고 한 사람씩 투표소에 들어가 투표를 마치고 나왔다. 얼굴에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자랑스러움이 역력히 드러났다. 일행 중 한 분은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 같다는 우스개 소리도 했다.

전날 밤을 꼬박 새운 탓에 피로가 누적된 나는 이른 저녁부터 잠을 보충했다. 다음날 유권자들을 수송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려면 그래야 했다. 다음날은 유권자 네 분을 모시고 또 다시 본 영사관으로 출발했다. 이날 역시 우리 집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복잡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남편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병원으로 출발해야 했다. 게다가 3년 만에 간신히 운전 면허증을 취득한 주(州) 정부 검사 아들은 아버지를 모시기에는 운전이 많이 서툰 상태였다.

하지만 가족들의 이해로 나는 본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오후에 남편이 먹을 죽을 끓이지도 못하고 겨우 쌀만 냄비에 담아놓은 채로 말이다. 이미 지난 해에 일정을 짜 놓은 상태라 다른 날로 변경하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이날 유권자들은 모두 여성분들이었다. 차 안은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역시 태어나 처음으로 투표를 한다면서 모두들 들떠 있었다. 무사히 투표를 마치고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까지 마친 우리 일행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스토리텔링 많은 후보에 대한 덕담을 나누면서 다시 각자의 집으로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온통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모두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한결같이 그 후보의 선전을 빌고 또 빌었다.

이틀 동안 본을 왕복하느라 피로에 지친 탓인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점점 갈색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피곤하지는 않았다. 유권자들을 모시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는 보람이 더 컸기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된 27일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서둘러 아침 일찍 본 영사관으로 출발했다. 토·일요일에 유권자들이 몰린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유롭게 영사관에 도착하자 예상외로 투표소는 한산했다. 모시고 간 분들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투표를 마쳤다.

나는 투표권이 없는 사람은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는 관계로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참관인으로 봉사하는 분이 나를 찾으러 일부러 나왔다. 재외 국민 투표 기간 동안에 날마다 영사관에 출근한다는 분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 직접 확인하고 싶어 나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을 서로 확인했다. 참관인 역시 내가 아는 지인이었다. 지인은 어떻게 매일 영사관을 왕복하느냐면서 놀라움과 반가움을 나타냈다. 우리는 웃음으로 서로의 수고를 칭찬했다.

일요일 일정을 마지막으로 나의 투표 봉사는 막을 내렸다. 주위의 유권자들 역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어쩌면 일생에 한 번 뿐일 수도 있는 기회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물론 후보들이 마땅치 않아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들도 있었다. 반경 1㎞에 마련된 투표소도 귀찮아 쉽게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 역시 있었다고 한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싶어도 투표권이 없는 탓에 대신 유권자들을 모시고 먼 거리도 마다 않고 날마다 투표소를 찾았던 이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결코 자신의 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