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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혼자 사는 노인의 수는 2009년 19만9600명에서 4년 만에 5만4000명이 늘어 2013년 25만3300명이 됐다. 65세 이상 전체 노인의 수가 116만7000명이니 5명 중 1명꼴이다. 한국사회가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어 ‘혼자 사는 노후’가 삶의 주된 형태가 될 것이란 말까지 들린다. 이는 바로 나 자신부터 나이 들어 혼자 살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다. 당장 ‘고독’이란 말이 떠오르다보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미경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장(49)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는 길”이라며 “또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면 된다”고 말한다. 함께 하는 삶을 살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 사람의 주장은 그 사람의 삶에 의해 담보될 때 가장 설득력을 가진다. 그런 관점에서 김 위원장의 이야기는 호소력이 있다.
“함께 하지 않는 삶은 무너지기 쉽다”
김 위원장은 내년이면 만 50세가 되지만 아직 미혼이다. 애초부터 결혼에 대한 미련은 없었고 결혼 계획도 없다. 생애미혼자 대열에 합류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모시고 사는 부모님은 김 위원장이 노후에 혼자 남게 될 것을 걱정하지만 김 위원장은 걱정이 없다. “20년 정도 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시니어클럽·실버타운·요양원 등 (100세 시대에 걸맞게)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지게 될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같은 세대의 사람들과 함께 가면 된다”고 했다. 함께 어울려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김 위원장은 “모임을 만들자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변에 저와 같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며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가고 있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양한 길이 있다”며 “꼭 직장 다니다 결혼하고 얘를 낳아 키
우는 것만이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은 길어지고 각자 나름대로 다양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는 ‘함께 하는 삶’이 오히려 중요해졌다는 게 김 위원장의 지론이다. “가까운 미래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각자가 원하는 인생만을 살아간다면 조화로운 삶을 이루기는 힘들다”며 “개인주의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삶이 없다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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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6반 출신의 김 위원장은 지금도 담임이었던 김민숙 선생님의 생일인 정월 대보름이면 동창들과 함께 한다. 김 위원장은 “남자 동급생이 장가갈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주례를 서시던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고 했다. 같은 해 졸업한 다른 반 동기들도 동네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많다. 김 위원장은 “시의원으로서 현안들을 처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면 올곧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며 “그럴 때면 수색초를 같은 해에 졸업한 동기라는 사실이 그렇게 고맙고 뿌듯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미래에도 김 위원장과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하다”
김 위원장이 남자들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도시계획관리위원회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함께 하는 삶’을 좇은 결과다. 공동체 문화를 만들기 위해 넘어야 할 현안들은 도시계획과 따로 떼어 놓고서는 해결하기 힘들다. 김 위원장은 “역세권 개발문제, 변전소 문제, 혁신파크 문제 등 은평구의 기반시설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역할을 떠맡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했다.
도시계획 분야는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한 김 위원장에게도 용어 자체부터 어렵고 생소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열심히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문제의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구의원부터 시작해 시의원이 됐다. 구의원 시절 주민들과의 소통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김 위원장은 “경험이 없었다면 갈등을 조율하는 가정에서 어려움이 컸을 것”이라며 인상 깊었던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증산중학교 체육관과 급식관에 얽힌 이야기였다.
증산중에는 원래 급식관만 있었고 체육관이 없었다. 학교에서 운동장 한 쪽에 체육관을 신축하려고 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체육관이 들어설 자리 옆에 살고 있는 빌라의 한 할머니는 체육관이 햇볕을 가린다며 결사반대했다. 김 위원장은 “할머니는 할복자살까지 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고 했다. 운동장이 좁아지는 문제도 있었다. 조기축구회는 공을 못 차게 된다며 반대했다. 급식소는 급식소대로 너무 낡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김 위원장은 학교와 교육청 관계자, 인근 주민들, 조기축구회, 학부모 등 모든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을 듣고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해서 급식관을 헐고 그 자리에 체육관과 급식관을 함께 짓자는 대안을 마련했지만 급식관이 10년이 되지 않아 불가하다는 법규가 걸림돌이 됐다. 김 위원장은 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을 찾아가 설득했다. 지난해 2년만에 문제는 해결됐다. 2년이라는 시간은 소통을 위한 대가였다. 김 위원장은 “문제점을 끄집어내고 서로 양보하다 보면 풀리지 않는 문제는 거의 없다”고 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세계일주가 꿈이다”
김 위원장은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미처 들지 못할 정도로 자신이 나름대로 꿈꾸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김 위원장은 원래 의류디자인 회사를 다녔다. 정치는 38살에 구의원으로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아버지는 1998년 지방선거에 나섰지만 ‘돈선거’로 패배의 쓴맛을 봤다. 당시 지방선거는 선거공영제를 낳을 정도로 혼탁했다는 설명이다. 구의원을 거쳐 시의원 재선까지 성공한 김 위원장은 요즘 주변에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준 딸”이라는 말을 듣는다.
김 위원장의 꿈은 부모님과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부모님과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평일보다는 토·일요일이 더 바쁘다. 와달라는 행사가 한 가득이다. 시의원은 특히 더 시간이 없다. 보좌관을 둘 수 없는 까닭에 연설문 하나 작성하는 일까지 모두 손수 처리해야 한다.
여성 시의원은 넣어주지도 않았던 도시계획관리위원회에 들어가 부위원장에 이어 위원장까지 하느라 김 위원장은 더욱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서울시 서부 교육장과의 점심에서 부모님과의 세계일주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교육장님이 하루에 한 번은 부모님께 시간을 드리라고 충고하셨다”며 “100세 시대이니 만큼 77세 동갑이신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