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지록위마 조고와 나치 괴벨스, 망국의 충분 조건

지록위마 조고와 나치 괴벨스, 망국의 충분 조건

기사승인 2022. 09. 30. 17:36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궤변이 진실과 양심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
중국인들은 아주 혐한 감정이 골수에 맺힌 케이스가 아닌 한 한국에 나름 관심을 많이 가진다. 한국 사정도 비교적 잘 알고 있다. 최근 며칠 동안 상당수 누리꾼들이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말이라고 우김)라는 고사성어를 한국과 관련한 키워드로 올려 놓은 현실을 보면 그렇다고 단언해도 좋지 않나 싶다.

clip20220930173517
지록위마 고사를 설명하는 중국의 아동용 서적의 만평. 나치 독일의 선전상 괴벨스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제공=검색 엔진 바이두(百度).
지록위마라는 고사성어는 약간의 설명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로 일컬어지는 진(秦)나라 때 시황제(始皇帝)의 총애를 받던 환관 조고(趙高)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시황제가 죽자 태자 부소(扶蘇)를 살해한 후 어리고 멍청한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했다. 조정의 모든 권력은 그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미 그의 손에 희생이 된 이사(李斯)를 대신해 승상도 됐다.

어느날 그는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기 위해 사슴 한마리를 어전에 끌어다 놓고 호해에게 "폐하를 위해 좋은 말을 한필 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호해와 중신들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어전의 분위기는 곧 사슴이 말이 되는 쪽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반면 죽어도 사슴을 말이라고 하지 않은 극소수의 신하들은 양심을 버리지 않은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고사성어 아닌가 보인다.

이 고사성어는 서양에서도 유명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교과서에도 실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연히 시공을 초월할 경우 진나라와 비견될 만한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도 배워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설사 배우지 않았더라도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을 정도의 학구열을 가졌던 그가 몰랐을 리가 없다.

그가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 영구화를 위해 독일인들을 미혹시키면서 쏟아낸 기가 막힌 명언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거짓말도 100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가 아닌가 싶다. 이외에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는 큰 거짓말에 더 잘 속는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는 말들도 지록위마를 소환하게 할 그의 대표적인 요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사변적이고 논리적이기로는 단연 세계 최고라고 할 독일인들의 대부분은 그의 세치 혀에 넘어갔다. 물론 당시 독일에 한스와 소피 숄 남매가 주도했던 '백장미단'의 단원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주인공인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등과 같은 깨어 있는 지식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 같이 히틀러 암살을 기도한 이들이 양심을 지킨 대가는 참혹했다. 사슴을 말이라고 차마 말을 못한 진나라의 극소수 중신들처럼 하나 같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괴벨스는 진나라 역사에서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노하우도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1933년 5월 10일 이른바 '베를린 분서' 사건을 일으킨 사실을 상기하면 진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는 독일인들의 사상 획일화와 세뇌를 위해 "비독일인의 영혼을 정화시키자"라는 슬로건을 내건 채 나치의 사상과 전면 배치되는 내용을 담은 책들을 불태우자는 선동을 적극 전개했다. 결과적으로 칼 마르크스, 마르틴 루터, 에밀 졸라 등의 저작 약 1만8000권을 훔볼트 대학 맞은 편 광장에서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 이후 독일과 나치의 괴뢰 정부가 들어선 국가들에서 언론의 자유는 개에게나 줘야 할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망징(亡徵)'이라는 저서를 통해 국가가 망하게 되는 47가지 이유에 대해 기술한 바 있다. 진나라와 나치가 찰나의 절정을 맛본 후 각각 15년과 13년 만에 처절하리만큼 망한 것은 확실히 괜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기야 그랬으니 공자 가문의 수신서인 '공자가어(孔子家語)'에도 "잘못된 길을 고수하면서 정치를 어지럽히면 죽여야 한다(집좌도執左道, 난정亂政, 살殺)"라는 말이 있지 않겠는가. 조고와 괴벨스 같은 인간들이 존재하는 국가에는 희망이 있을 까닭이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 같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