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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지구인들이 더 똑똑한 지적 생명체와 함께 살 수 있었다면

[연재] 지구인들이 더 똑똑한 지적 생명체와 함께 살 수 있었다면

기사승인 2024. 08. 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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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5회>
현생인류와 다른 종들
왼쪽부터 현생 인류,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의 두개골. wiki commons
송재윤1
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 동물과 다른 지구인들, 왜 모두가 단일종인가?

태고로부터 지구인들은 스스로 다른 모든 동물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고등의 영특한 존재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동서양 고전을 들춰보면 "만물의 영장(靈長)"으로 군림하는 지구인의 놀라운 능력을 스스로 칭송하는 문구들로 가득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은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라 주장했다. 선진(先秦) 시대 유생(儒生)들은 금수와 달리 인간은 사단칠정(四端七情) 등 도덕심과 공감 능력을 타고난 우월한 존재라 믿었다. 그렇게 지구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확신했다. 가령 16~17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비극 속에서 햄릿은 인간을 찬양하며 이렇게 읊어댄다.

"인간은 실로 대단한 작품이구나! 이성은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며, 그 형체나 움직임이 재빠르고 경탄스럽고, 행동은 천사와 같고, 원려(遠慮)는 또 얼마나 신과 같은가? 실로 세상의 아름다움이요, 동물들의 귀감(龜鑑)이려니!"

물론 이와 달리 지구인들 스스로 끝 간 데 없이 치닫는 자신들의 교만과 허영, 탐욕과 질시, 방일과 나태를 자책하고 경계하는 문구들 역시 수없이 많다. 스스로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자문하고 자답하는 동서양 여러 전통의 고전들을 읽고 있자면, 지구인 개개인이 복잡하고 다층적인 성격의 희한한 존재란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에서 리어왕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묻는다. "내가 누구인지 진정 말해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모든 지구인을 향해 발사한 화살촉같이 섬뜩하다.

◇ 사라진 지구인의 사촌들

아마도 외계인 미도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는 내게 물었다.

"지구 위에 지구인들 외에도 비슷한 지능의 고등생물이 여러 종 함께 뒤섞여 살아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지구 위에는 왜 하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만이 문명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까요?"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오늘날 지구 위에는 80억의 지구인들이 살 수 있는 모든 땅에 붙어서 살아가지만, 유전과학에 따르면 그 지구인들의 게놈(genome, 유전자 총체) 배열(sequence)이 99.9% 같다고 한다. 대체 왜 이 지구 위에는 현생 지구인들 외엔 다른 지구인들이 없어야만 할까?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은 4만년 전까지 유럽 지역에서 생존했던 현생 지구인의 사촌이다. 데니소바인(Denisovans)은 2만5000년 전까지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화석화된 유골의 해부학적 특성만 보면, 그들은 일단 현생 지구인과 놀랍도록 유사한 모습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193종의 영장류 중에는 그 정도로 지구인과 해부학적 골격이 비슷한 경우가 없다. 그래서 일단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 지구인들과 함께 호모사피엔스라는 학명의 동일 종(種, species)으로 묶일 수 있다.

같은 호모사피엔스라지만 차이점도 분명하다. 일단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 지구인들보다 몸통에 비해 팔다리가 훨씬 더 짧고 굵은 편이며, 골반이 옆으로 더 넓게 벌어져 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차이점은 두개골의 생김새에서 드러난다.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은 현생 지구인의 두개골보다 용량이 더 큰데, 한눈에 차이를 감별할 수 있을 만큼 앞뒤로 긴 타원형이다. 그에 비하면 현생 인류의 두개골은 위아래로 길뿐더러 대체로 구(球, globe)형을 보인다.

바로 그러한 해부학적 차이 때문에 고고인류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현생 지구인 모두가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의 서로 다른 아종(亞種, subspecies)이라 설명한다. 현생 지구인들과는 달리 나머지 두 아종의 후손들은 지구 위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고고인류학 분야에서 다수 학자가 현생 지구인들의 유전자 속에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도 일부 섞여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게 투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현생 인류의 게놈에서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나 여전히 논란은 분분하다.

과테말라 원주민들
과테말라의 원주민들. wiki commons
◇ 인종(人種, race)은 없다!


고고인류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설명하듯 이 세 타입의 서로 다른 지구인들이 모두 호모사피엔스라 할 수 있다면, 이들이 혹시 서로 다른 인종(人種, race)이었다고 할 순 없을까? 만약 그렇게 정의할 수 있다면, 오늘날 지구인들이 널리 사용하는 인종 개념은 해부학적 특징과 게놈 배열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채 고작 피부색, 눈 색깔 따위 피상적 차이점만 강조하는 주먹구구의 구분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오늘날 지구인들은 흔히 피부색에 따라서 서로를 크게 흑(black), 백(white), 황(yellow), 갈(brown) 등 여러 인종으로 나눈다. 피부색의 차이는 본질적인 유전학적 차이는 전혀 아니다. 게놈 배열만 놓고 볼 때, 어떤 백인이 다른 백인이 아니라 어떤 흑인과 더 비슷할 수도 있다. 유럽인 중엔 아시아인을 더 닮은 자도 있으며, 아프리카인 중에도 게놈 배열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더 유사할 수도 있다.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같은 피부색의 지구인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전학적 차이점이 다른 피부색 지구인들 사이의 차이점보다 훨씬 더 큰 경우가 다반사다.

인종 간(between) 차이는 인종 내(within) 차이보다 작다. 인종 내 차이는 인종 간 차이보다 크다. DNA 배열을 놓고 본다면 흑·백·황·갈의 인종이란 결국 인류를 오직 피부색만으로 분류해서 보는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다. 흑·백·황·갈의 구분은 유전학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그저 피부 색깔과 눈·코의 생김만 보고서 지구인들을 몇 가지로 나누는 직관적이고, 원시적이고, 지극히 정치적인 구분법이다. 결국 인종이란 객관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지어낸 가공의 개념일 뿐이다. 해부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인종이란 본래 없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노예로 삼기 위해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구인들은 꽤 긴 세월 동안 피부색, 머리털 빛깔, 눈 색깔 등 피상적인 외양만 보고서 지구인들 사이에는 질적으로 다른 여러 종의 사람들이 있다고 믿어왔다. 물론 그런 믿음 속에는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들보다 유전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우생학적 편견이 깔려 있었다.

리어왕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묻는다. "진정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장구한 세월 지구 위에 살아왔지만, 지구인들은 여전히 존재론적 의구심에 휩싸여 있다. 인간을 찬양했던 햄릿이나 자기가 누군지도 몰라 두려움에 떨던 리어왕이나 모두가 광막한 우주 앞에선 컴컴함 무지를 자각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지구인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순간 자기 자신의 무지와 몽매를 스스로 망각하는 데 있지 않을까? 만약 지구 위에 지구인보다 높은 지능의 고등 동물이 살고 있었다면, 오늘날 지구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지구인들이 자신들을 가장 어리석게 만드는 교만의 늪과 자만의 덫과 오만의 섬에서 더 쉽게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계속>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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