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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칼럼] 사대와 친미의 이념화

[이효성 칼럼] 사대와 친미의 이념화

기사승인 2023. 02. 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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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본지 자문위원장_전 방송통신위원장2
아시아투데이 주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엄한 국제 관계에서 외교는 자신의 생존을 지키고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선린을 내세워 조공이란 것도 하고, 때에 따라 원교근공 또는 근교원공이라는 전략도 구사한다. 조선은 그런 외교적인 방침으로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를 택했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의 명분 중 하나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이 구실은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사대로 변질되어 조선 건국의 명분으로 표방되었다.

이런 외교적 수단 또는 방침에 불과한 '외교적 사대'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체가 목적인 '이념적 사대'로 변질되어 조선의 사고와 행동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예컨대 최만리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을 중국에 대한 사대에 반한다며 반대했다. 인조반정 이후 조선이 오랑캐로 여기던 청나라가 부상했음에도 사대사상에 갇혀 명나라만을 떠받들며 청나라를 무시하고 홀대하다 두 차례의 호란을 당했다. 명나라가 망하자 조선은 한때 소중화를 자처하며 망한 명나라와 그 황제에 대한 더 깊은 사대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이처럼 이념이 되어버린 사대주의로 오직 중국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쇄국을 하다 조선은 결국 멸망했다.

2차 대전 직후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진영과 소련이 주도하는 공산 진영으로 나뉘어 양진영이 대립하며 힘겨루기를 하는 냉전이 시작되었다. 이때 북한의 공산 정권이 소련과 중공의 지지와 지원하에 남침을 감행했다. 이에 미국은 아시아에서 공산 세력의 확장을 막고자 UN을 업고 한국전에 참전하여 북한의 남침을 저지했다. 미국의 참전은 남한을 구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공산 세력의 확장을 막으려는 것이었지만, 그 결과 남한의 공산화를 막아주었기에 남한으로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한국 참전은 공산 세력의 억제라는 미국의 국제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면보다는 그에 의해 한국이 구조되었다는 면이 더 강조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미국에 감사하는 마음과 그에 따른 친미적인 태도는 단순한 감사와 친미의 차원을 넘어 미국을 구세주처럼 믿고 추앙하는 하나의 이념이 되었다. 이처럼 이념이 된 친미주의에 의해 미국은 떠받들고 미국 말은 무조건 따르는 것이 올바른 우리의 자세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일부 한국인들에게 친미는 하나의 이념이 되었다. 그들에게 미국은, 조선의 중국처럼 섬기고 받들어야 하는 대상이다. 그들의 친미는 미국에 대한 이념적 사대인 것이다. 그런 그들은 1905년 미국이 일본과 태프트-가쓰라 밀약으로 미국의 필리핀 점령과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양해했을 뿐만 아니라 을사늑약을 뒤에서 방조하고 미국 공사관을 가장 먼저 철수한 일도, 1950년 애치슨 라인이라는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사실도,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이 요청한 일본의 긴급차관을 미 재무부가 막았던 비화도 무시한 채, 미국을 선한 한국의 보호자로만 인식한다.

우리가 미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의리로나 실리로나 마땅한 일이다. 미국은 한국의 공산화를 막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수 있게 해주었고, 한국이 오늘날과 같이 번영하는 데에도 큰 보호막 구실을 해주었다. 게다가 한·미는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 인권, 법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이다. 그래서 '태극기 집회'에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휘날려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독일 신문 《타게스 슈필》의 "미국이 아무리 나빠도 중국보다는 낫다"는 지적도 우리는 전적으로 수긍한다.

그렇다고 미국을 무조건 맹신하고 떠받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자세는 우리의 자주적 외교와 독립성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이념적 사대일 뿐이다. 중국에 대한 이념적 사대가 그러했듯, 특정 국가에 대한 이념적 사대는 우리의 선택지를 좁히고, 우리의 외세 의존성을 높이고, 자력갱생을 소홀하게 만들어, 커다란 해악을 초래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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