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강성학 칼럼] 대한민국 안보정책의 항구적 딜레마: 대륙과 해양의 사이에서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files.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120010010292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1. 20. 18:04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 충돌지대
◇유럽은 전쟁이 일상적이었지만 미국은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때 말고는 평화 누려왔기에 유럽대륙은 '방위문화' 발전한 반면 미국은 평화를 '정상상태'로 간주했으며, 유럽은 '힘의 정치'를 국제정치의 본질로 봤지만, 미국은 국제사회에도 법적·도덕적 행동 기대했음
◇그런 인식이 역전된 것은 미국이 냉전 체제 속 자유서방세계의 수호자를 맡은 반면 유럽이 미국의 보호 속 평화의 소비자가 되면서부터임
◇제2차 세계대전 후 북한은 대륙세력인 공산제국 소련에, 남한은 세계최강 해양세력 미국에 편승해 안전과 번영을 모색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작은 미국(a small America)'으로 발전시키려 했고, 북한을 점령한 스탈린은 북한을 소련공산주의 제국의 극동 프랜차이즈로 만들었음
◇대한민국 지도자에게 이런 역사철학적 인식과 국제정치적 안목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지도자는 대륙적 '힘의 국제정치'를 해양적 법과 도덕의 정치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할 길을 모색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섬나라'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할 해양세력과 함께 가는 지혜 발휘해야 함
◇기원전 5세기 육지국가였던 아테네는 선구적 지도자 덕분에 해양국가로 완전히 변모해서 거대 페르시아 제국과 싸워서 승리했음
◇유라시아대륙에서 전체주의 세력이 있는 한, 앞으로 오랫동안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 경쟁과 갈등 계속될 것임
◇문재인 정권은 노골적으로 대륙지향으로 방향을 돌려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야기했으나 윤석열 정부가 다행히 국가진로를 과감히 되돌려 전통적 해양세력과의 연대 복구했는데 확고한 역사철학적 안목에 입각했다기보다는 전임정부에 대한 비판에 따른 기계적 반작용이란 느낌이 있음
◇군사적 강대국이 아닌 대한민국은 가장 강력한 국가에 편승하는 것이 현명하고, 섣불리 대외정책을 기회주의적으로 구사하다가는 구한말이나 양차대전 전 이탈리아처럼 비참해질 것임을 지도자는 명심해야

20241107010003741_1731022860_1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한반도는 16세기 말부터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의 완충지대로, 그리고 해양세력에게는 교두보라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하여 한반도는 지정학적 충돌지대(the shatter-belt)가 되었다. 그 결과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과정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분단되고 말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오늘날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지정학적 충돌이 여전하고, 또 그와 동시에 그들 간의 역사적 경험과 철학적 인식체계의 본질적 차이가 대립하는 충돌지대가 되었다.

우선 첫째로 유럽은 1648년 근대국가체제의 탄생 이래 국가 간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상호 간에 항상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간주하고 언제든 전쟁도 불사하는 대륙세력의 소위 '방위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18세기 말 건국 이래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두 대양에 의해 동(東)과 서(西)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또 국력의 현저한 차이로 인해 미국의 남쪽과 북쪽으로부터의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은 자연스럽게 평화를 국가 간 "정상적인 상태"로 인식하는 해양국가적 사고를 배양하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국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그의 고별사에서 말했던 훈계에 따라 유럽의 국제적 권력투쟁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둘째로, 유럽과 미국의 역사적 경험도 판이했다. 유럽국가들의 긴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으며 평화란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전쟁이란 수단을 달리한 정책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칼 폰 클라우제비츠(Cal von Clausewitz)의 정의는 국가행위의 당위적 요구가 아니라 현실적 진리였다. 따라서 유럽인들에게 국제정치란 곧 권력을 위한 투쟁이었다. 이와는 판이하게 최초의 근대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미국인들은 치열했던 독립전쟁과 1860년대 초 비참했던 남북전쟁의 참화가 그들이 기억할 만한 전쟁역사의 거의 전부였다. 외부로부터 위협을 거의 경험하지 않은 미국인들에게 전쟁은 그들의 집단적 기억 속에서도 아득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강대국 간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한 미국인들은 안전했다. 유럽인들이 '평화의 생산자'라면 미국인들은 '평화의 소비자'였다.
셋째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서로 다른 국제정치에 대한 철학적 인식체계를 갖고 있다. 유럽에선 마키아벨리, 홉스, 마이네케, 슈미트, 모겐소로 이어지는 소위 힘의 정치가 일상적인 국제정치의 본질이라고 간주하는 현실주의의 대변자들을 낳았다면, 이와는 달리 미국에선 일종의 탈-정치적인 토마스 모어, 로크와 애덤 스미스의 정신을 구현한 우드로 윌슨과 같은 이상주의자를 배출했다. 유럽인들이 국가안전과 국제사회의 평화를 생산하는 전사의 신념체계를 발전시켰다면, 미국은 평화의 소비자로서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의 연장선상에서 법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양식을 그대로 국제사회에도 기대하고 또 그것을 적용하려고 했다. 대륙의 유럽인들은 항상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적에 대처하는 것이 삶의 방식이었다면, 미국인들에게는 적과 동지의 구별은 불필요했고 오직 전쟁 그 자체가 적이고 평화 그 자체가 동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과 미국 사이의 상이한 철학적 인식체계 혹은 세계관이 20세기 말 소련제국의 붕괴와 냉전체제의 종식을 맞아 기이하게도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치열한 냉전체제 속에서 자유 서방세계의 수호자로 앞장선 미국이 전사의 철학적 인식체계와 신념을 수용하고 강화해 온 반면에, 미국의 보호 속에서 오랫동안 안락한 평화의 소비자였던 유럽인들이 이제는 국제사회의 법과 도덕을 앞장서 내세우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변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역사적 변환은 전방에서 항상 긴장 속에서 경계에 임하는 일선장병과 후방의 안락한 삶을 관리하는 행정요원 간 시각의 현저한 차이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날벼락 같은 무력침공사태로 인해 유럽인들이 자신의 전통적 세계관으로 급속히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한쪽 끝에 자리한 한반도는 대륙세력인 중화제국에 수세기 동안 편승(bandwagoning)하다가 그것이 몰락하자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주변 강대국들 간의 균형(balancing) 정책을 시도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한반도가 분단되어 북한은 대륙세력인 공산제국 소련에, 그리고 남한은 세계최강의 해양세력인 미국에 편승하여 안전과 번영을 모색했다.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은 미합중국 헌정사의 교훈을 신생 대한민국에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는 초대 조지 워싱턴의 대통령과 제3대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처럼 미국의 민주공화정의 성공적 계승을 위해 국민의 교육을 강조했다. 미국의 첫 재무부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립전쟁의 재향군인들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모두가 토지소유주가 되게 하였다. 상황은 달랐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직후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모든 농민이 농지의 소유주가 되게 하였다.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처럼 이승만 대통령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북한의 6·25 침략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한미동맹을 결성하여 안전 속에 국가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작은 미국(a small America)'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던 반면에 북한을 점령한 스탈린은 북한을 소련공산주의 제국의 극동 프랜차이즈로 만들었다. 스탈린은 소련군 대위였던 33살의 김일성을 지점장으로 임명했다. 그에게는 명령에 충실한 젊은 장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후 북한의 김일성은 오직 남한의 공산혁명화라는, 즉 소비에트화하려는 단일 목적을 내세우면서 전체주의적 일인 세습정치를 유지했다. 비록 스탈린 사후에는 '주체'라는 김일성주의를 내세웠지만 그 통치방식은 여전히 스탈린체제가 북한의 유일한 모델이었다.

그 결과 북한은 공산 프랜차이즈를 개점한 뒤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세계 최빈국의 처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반면에 북한의 존재로 인해 대륙진출이 막혀 사실상의 '섬나라'가 된 대한민국은 오직 해상을 통해 명실공히 풍요로운 선진국이 되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대륙국가들처럼 마키아벨리식으로만 행동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해양국가의 자유주의적 법과 도덕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돈키호테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대륙적 힘의 국제정치를 해양적 법과 도덕의 정치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길을 국제적으로 꾸준히 모색해 나가면서, 당장 단기적으로는 우선 섬나라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해양세력과 함께 가는 슬기로운 정책과 효과적인 전략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역사철학적 인식과 국제정치적 안목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평범한 지도자들은 절호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포착하기보다는 슬며시 회피해 버린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육지 국가였다. 그러나 선구적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는 아테네를 완전한 해양국가로 바꾸어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과 싸워 승리했다, 그 후 아테네는 역사에 빛나는 해양제국을 건설했다. 콜럼버스(Columbus)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 이후 세계역사는 해양세력에 의해 꾸준히 주도되었다. 스페인제국에서 대영제국으로 그리고 20세기에는 팍스-아메리카의 해양세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장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반민주 전체주의 세력으로 남는 한 앞으로도 오랫동안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경쟁과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3면이 바다이며 북쪽이 공산주의 세력에 막힌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이래 해양세력과의 유대 속에서 국가의 번영과 민주정치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대륙에 뿌리를 둔 공산 좌익세력은 꾸준히 대한민국의 전복을 도모해 왔다. 특히 지난 문재인 정권은 보다 노골적으로 대륙지향으로 방향을 수정함으로써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2022년 정권교체로 윤석열 정부는 국가 진로의 궤도를 다시 정상으로 과감히 되돌려 그동안 빗나간 대륙지향을 지양하고 전통적 해양세력과의 연대를 다시 복구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방향의 궤도 수정이 확고한 역사철학적 안목에 입각한 대외정책의 정상화가 아니라 단지 일시적으로 전임정부의 비판에 대한 기계적 반작용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분명히 말로는 궤도를 수정한다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에서는 아직도 중국과 러시아, 특히 경제적인 이유를 내세워 중국과의 관계를 우리의 유일한 동맹 해양국가인 미국과의 관계에 못지않게 우호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주의적 자세는 국가적 망신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제1차 및 제2차 양차대전 때 이탈리아가 민족적 숙원인 대륙의 영토회복(irridentism)을 위해 해양제국 영국과 프랑스를 버리고 대륙제국 독일과 동맹을 맺은 결과는 비참했다. 대륙제국 독일이 해양제국들의 연합국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양제국들에게 편승해야 했었다.

실존적 투쟁의 대상인 핵무장한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으면서 세계의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이 마치 균형자처럼 행동하려는 자세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비록 선진국이 되었지만 아직은 강대국이 아니다. 균형 잡는 특권적 행동은 오직 강대국에게만 주어지는 국제정치현상의 특징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군사적 강대국이 아닌 국가의 현명한 정책은 가장 강력한 국가에게 편승하는 것이다.

20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우리에게 세계최강국 미국보다 더 좋은 편승할 대상은 없어 보인다. 이것이 올바른 정책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성공적 최고 지도자의 제1차적 임무는 국가가 대외적으로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설득하고, 그리고 그 길을 향해 국가를 단호하게 이끌어 가는 것이다. 대외정책을 섣불리 기회주의적으로 구사한다면 구한말처럼, 그리고 양차대전 전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국가의 앞날은 비참해질 것이다. 바로 그러한 중대한 차이에서 역사는 한 나라의 '위대한 지도자'와 '그렇고 그런 엉터리 지도자'의 차이를 뚜렷이 구별하여 후세에 전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