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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앗아간 의병 문서, 100여년 만에 고국 땅 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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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8. 15. 10:10

최익현 편지 등 13건 처음 확인…임시정부 역사서도 미국서 환수
한말 의병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최근 '한말 의병 관련 문서'와 '한일관계사료집(韓日關係史料集) -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을 각각 환수했다고 14일 밝혔다. 사진은 '한말 의병 관련 문서'의 최익현 서신 부분. /국가유산청
구한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저항했던 의병들의 문서와 편지가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1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최근 국내로 들여온 '한말 의병 관련 문서'와 '한일관계사료집(韓日關係史料集) -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을 공개했다.

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1851년부터 1909년까지 작성된 문서 13건을 아우른다. 13도 창의군에서 활동한 허위·이강년 등이 남긴 글과 위정척사론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항일 의병 운동을 이끈 최익현의 편지 등이 담겼다.

의병들이 남긴 기록은 2개의 두루마리에 실려 있다. 자료를 이어 붙인 뒤 각각 '한말 일본을 배척한 두목의 편지', '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펼쳤을 때 가로 길이가 각각 406.5㎝, 569.5㎝에 달한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두루마리 첫머리에 쓴 글과 전문가 견해를 토대로 일제 헌병경찰이었던 개천장치가 자료를 모은 뒤, 1939년 8월 지금의 형태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했다. 문서는 일본의 한 고미술 거래업체가 소장했던 것으로, 지난 7월 복권기금을 통해 구입했다.

문서 곳곳에는 어려운 상황에도 의지를 꺾지 않았던 의병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또한 의병 활동을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감시했던 일제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최익현이 1851년 '최기남'이라는 이름으로 쓴 편지에는 "국권 회복을 제창하며 군사를 일으키다 체포돼 대마도에 유배됐는데 음식을 끊어 죽었다"고 설명한다.

국가유산청, 한말 의병 관련 문서·한일관계사료
'한일관계사료집­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 /국가유산청
이날 함께 공개된 '한일관계사료집'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편찬한 역사서로, 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다. 한일 관계사를 중심으로 삼국시대부터 연대별로 일본의 침략성을 실증하고, 식민 탄압의 잔혹성과 3.1운동의 원인 및 전개 과정을 정리했다. 총 4책으로 구성돼 있다.

편찬 당시 총 100질이 제작됐으나 현재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것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독립기념관 소장본,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뿐이다. 지난 5월 미국에 거주하는 한 동포가 기증한 이 자료는 3·1운동 민족대표 중 한 명인 김병조의 인장이 찍혀 있어 가치가 크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고하 송진우 선생의 부친이자 담양학교 설립자인 송훈이 시문을 쓴 현판도 함께 공개했다. 현판은 일본에서 고미술 거래업체를 운영하는 김강원 씨가 최근 기증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나라 밖에 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되찾아온 물리적 회복을 넘어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지켜왔던 정신을 오롯이 회복하는 값진 성과"라고 말했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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