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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 칼럼] 연금개혁, 청년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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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5. 27. 18:13

윤석명
윤석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연금개혁 논쟁에 불이 붙었다. 지난 2년 동안 강 건너 불 보듯 하더니, 21대 국회 막판에 와서야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급히 처리하자고 해서다. 연금개혁이 늦어질 때마다 하루에 1100억원씩 연금부채가 늘어난다면서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시급했다면, 왜 그동안 연금개혁 논의에 방관자적 자세를 취해왔는지 묻고 싶다.

5년 주기로 건강상태를 평가하는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가 지난해 3월에 공개됐다. 이미 1년 하고도 2개월 전이다. 추계 결과는 충격적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로 그대로 유지하고 향후 10년 동안 보험료율을 15%까지 인상할지라도 국민연금 재정안정 달성이 한참 어렵다"는 진단을 받아서였다. 이마저도 0.7명 수준까지 급락한 합계출산율이 1.21명까지 반등한다는 지극히 낙관적인 가정을 적용하여 얻어진 결과다.

이처럼 암울한 진단이 나왔음에도 지난 1년을 허송세월했다. 수지균형, 즉 '받을 돈과 내는 돈'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재정안정화 논의의 본질에서 벗어난, 국민연금기금 운용만 잘하면 보험료 적게 걷어도 된다는 '희망 고문' 위주의 접근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연금제도란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제도다. 99% 이상이 연금수리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연금수리에 충실하려면 들어오고 나가는 돈의 균형을 맞추어 놓아야 한다. 우리는 대다수 OECD 회원국들과 달리 연금수리 균형을 맞추어 놓지 못하고 있다. 출생률이 급락하다 보니, 그 어느 나라들보다도 연금의 수지균형을 맞추어 놓아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재정계산위원회와 국회 연금특위는 기금운영 관련 주제에 회의시간 대부분을 할애하면서, 그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국회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의 학습 내용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있다. '연금을 10%포인트나 더 많이 받으면서도 보험료는 조금만 더 내는' 1안(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과 '연금은 그대로 받으면서 보험료만 더 많이 내는' 2안(소득대체율 40%-보험료율 12%)의 기금소진 시점이 1년만 차이가 나서다. 국민연금 건강상태를 기금소진 시점 위주로 판단해 온 관행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해서다.
기금소진 시점 위주 접근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공적연금 강화라는 명목으로 그동안에는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안 중심으로 기금소진 시점을 비교해 왔다. 우리가 연금을 배워 온 일본의 보험료는 18.3%로 우리 두 배가 넘지만 소득대체율은 33%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일본의 연금 운영사례를 우리의 연금논쟁과 결부시키기 위해 30%로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낮춘 경우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위원으로 참여한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회에 제공된 추계 자료에 따르면, '소득대체율 30%-보험료 15%'안의 기금소진 시점이 2070년이다. 반면에,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5%'안의 기금소진 시점은 2065년이다. 소득대체율을 20%포인트 더 지급하는데도, 기금소진 시점은 불과 5년만 차이가 난다. 기금소진 시점 위주로 재정안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착시효과를 유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미래 세대에게 빚을 전가하지 않을 보험료는 19.8%이다. 1988년 도입했을 때는 3%, 지난 26년 동안에도 9% 보험료를 걷었다. 받을 연금액보다 턱없이 적게 걷다 보니, 빚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미적립 부채(Unfunded liability)라고 한다. 연금연구회 소속인 한양대 전영준 교수 추정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1825조원(GDP 대비 80.8%)에 달한다.

더불어민주당은 통 큰 양보를 했다고, 소득대체율 44%에 보험료율 13%안을 21대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이 안을 실행에 옮긴다면 2050년에 6366조원(GDP 대비 123.2%)의 미적립 부채가 발생한다. 단 27년 만에 미적립 부채를 3.5배나 더 늘린다. 이 안이 서둘러 처리해야만 할 '재정안정' 방안이라 할 수 있을까? 전문가 외에도 일반 국민, 특히 청년층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축구시합으로 치면, 기금소진 시점은 전반전의 중반 이전에 해당한다. 축구시합에서는 후반전 막판에 승부가 자주 뒤집힌다. 국민연금이 채택한 70년 재정평가 기간의 말이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연금 건강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누적적자다. 누적적자란 기금이 소진된 시점부터 재정평가 연도 말인 2093년까지 발생할 적자액을 더한 수치다.

최근 공개된 2093년까지의 국민연금 누적적자는 2경1656조원에 달한다. 2018년 4차 재정계산 때의 1경7000조원과 비교하면, 5년 만에 4656조원이 더 늘었다. 이 수치가 우리 국민연금이 처한 민낯이다. 국민연금 현실이 이러한데도 지급률을 더 높이자고 하니, 망국의 길로 가려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층 반감이 커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청년층이 주로 참여하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론화위원회의 시민대표단 결정을 평가한 내용이다. "500명을 가두어 놓고 가스라이팅시킨 결과다." "지금은 힘이 없어 당하지만, 우리가 의사결정을 주도하게 되면, 이렇게 결정한 세대들 '연금 고려장' 시키겠다." 청년층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니 청년층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연금개혁 논의가 필요하다는 거다.

개혁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징후가 속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속전속결로 연금개혁 문제를 처리하자고 한다. 국가백년대계가 걸린 문제를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다. 청년층 의견을 들어가면서, 또 기존에 논의된 개편안이 진정 제대로 된 개혁안인지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기 위해서라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연금개혁이 아무리 시급하다 해도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22대 국회에서 차분하게 연금개혁 논의를 이어가야 하는 이유다. 단 올해 안에,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연금개혁 논의를 마무리 짓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한다. 야당 대표가 여당안을 받기로 한 마당에, 세부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본다고 해도 1년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어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석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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